죽기전에 꼭가봐야할 자연절경,유산/죽기전에 꼭 가봐야할 자연절경,유산

죽기전에 꼭 가봐야할 자연절경(유산) 81, 프라하 성,Prague Castle, 체코 2

세인트1 2016. 4. 16. 13:53

프라하 시내에 있는 고대 양식의 건물 전체가 유네스코 유산 역사지구 보호구역이다.

모든 건물들이 몇백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만약 3-4일의 시간적 여유를 가질수 있다면 이곳에서 숙박을 하면서 자세히 구경하고 싶은곳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프라하 역사 지구

[ Historic Centre of Prague ]

요약

프라하(Prague) 시가지의 건축물들은 중세시대에 건축학적·문화적 중심지였던 프라하의 영향력을 잘 대변해 준다. 프라하에는 11~18세기에 건축된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이 남아 있다. 하라드차니 성(Hradčany Castle), 성 비투스 성당(St Vitus Cathedral), 카를 다리(Charles Bridge) 등 세계유산에 등록된 많은 건축물은 대부분 14세기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 4세 황제 시대에 축조된 위대한 기념물들입니다.


블타바(Vltava) 강, 가옥들이 형성한 풍경, 간간이 탑이 보이는 성들, 그리고 주변 건물들이 보여주는 경관 때문에 프라하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대표적인 역사 중심지인 중세 도시 프라하는, 샤를 4세가 새로운 예루살렘을 건설하고자 하는 의도로 건설된 신도시이다. 프라하의 건축은 14, 15세기의 고딕 양식, 18세기 전반 바로크 절정기의 양식, 1900년 이후 모더니즘 양식까지를 한눈에 보여 준다. 그만큼 중부 유럽뿐 아니라 유럽 전역의 건축 발전에 있어 주도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라하는 도시 속에서의 창조적인 삶, 시대를 넘나드는 건축과 인간 정신의 조화라는 믿음을 대표하는 세계 건축의 중심부로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프라하는 역사 속에서 오늘날까지 발전한 도시 구조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역사적 도시이다. 중세 초기에 건설을 시작한 프라하는 도시의 성장 단계와 그 변화 과정이 거대한 도시 구조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프라하는 전성기고딕 시대에 확장되었으며, 바로크 시기와 19세기에 더욱 확장되었다. 대규모 도시 재개발이나 철거를 하지 않은 까닭에 전반적인 구조와 양식, 그리고 공간 구성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도시와 관련한 기록에 따르면, 1,100년의 역사를 가진 프라하는 각 시대의 역사와 문화 양식을 건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프라하에는 건축 역사의 각종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들이 모여 있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을 꼽으면 프라하 궁, 성 비투스 성당, 프라하 성 앞의 하라드차니 광장, 강의 왼쪽 제방에 있는 발드체인(Valdštejn) 궁전, 고딕 카를 다리, 성십자가 교회의 로마네스크 원형 건물, 오래된 도시 광장 주변으로 고딕식 아케이드를 이루는 거주지들, 스타레메스토(Staré Mesto)에 있는 전성기고딕(High Gothic)의 성제임스 프란체스코회 교회(Minorite Church of St James), 노베메스토(Nove Město)의 19세기 말 건물과 도시 계획 등이다.


프라하는 중세 시대 중부 유럽에서 기독교가 발전하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중세 초기 프라하는 유럽의 문화 중심지였다. 1348년에 문을 연 프라하 대학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가운데 하나이고, 14세기 말과 15세기 초의 대학 환경은 사실상 종교개혁운동의 시발점이 된 후스 파(Hussite)의 사상을 형성하는 토양이 되었다.


카를 4세 집권 이후, 프라하는 중부 유럽의 지성과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그러한 환경 속에서 페트르 팔러(Petr Parléř), 얀 후스(Jan Hus),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안토닌 드보르자크(Antonín Dvořák), 앨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에드워드 버네스(Edvard Beneš, 국제연맹의 공동 설립자), 바츨라프 하벨(Václav Havel)과 같이 예술, 과학 그리고 정치적으로 저명한 인사들이 프라하와 관련을 맺었다.


프라하는 수많은 기념물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시 경관을 자랑한다. 프라하 역사 지구는 중세 시대부터 현재까지 도시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그 과정을 감탄스럽게 보여 주고 있다. 이 도시는 14세기부터 중부 유럽이 정치·경제·사회·문화면에서 진화하는 과정과 건축과 예술의 전통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나아가 중부와 동부 유럽의 도시들에게 도시 발전의 모델이 되어 주었다.


프라하는 중세 시대 중부 유럽에서 기독교가 발전하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중세 말기 이후 프라하는 정치적 주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의 건축가와 예술가들을 매료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이 도시가 건축적·예술적 보물을 축적하는 데 기여하였다. 15세기에 설립한 카를 대학으로 프라하는 유명한 교육 도시가 되었고, 이 명성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카를 4세 집권 이후, 프라하는 중부 유럽의 지성과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프란츠 카프카와 같이 저명한 인사들과 관련을 맺었다.


프라하 역사 지구는 3개의 개별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시가지인 스타레메스토(staré Město), 소시가지인 말라스트라나(Malá Strana), 신도시 노베메스토(Nove Město)이다. 도시는 9세기 말, 블타바 강의 제방 왼편 언덕의 요새화한 정착지에서 시작하였다. 지금의 프라하 궁전이 있는 자리이다. 시가지는 강을 따라 확장되었고, 건너편 제방에 두 번째 요새가 건축되었다. 10세기에는 주변으로 점차 정착 구역이 확장되면서 보헤미안 국가의 수도가 되었고, 973년에는 주교 관할지가 되었다. 초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 비투스 성당의 건축이 시작된 것은 11세기 후반부터이다.


1135년, 소베슬라프 2세(Sobeslav II)가 기존의 목재 구조를 대체하는 거대한 석조 성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12세기 들어 프라하는 한층 확장되었다. 스트라호프(Strahov)에 프레몽트레회(Premonstratensian) 수도회가 건축되고 블타바 강에 새로 석재 다리가 놓이면서 구 도시 스타레메스토가 확장된 것이다. 14세기 중반에는 방어벽을 구축한 노바메스토를 건설하여 도시는 더욱 성장하였다. 당시 프라하는 유럽 전역, 특히 이탈리아에서 온 예술가와 건축가들의 문화 중심지였다. 그 결과 대규모 재건축 프로그램이 행해졌다.


1541년에 발생한 화재로 블타바 강 왼편 정착 지역이 대부분 파괴된 뒤 도시는 르네상스 양식의 재건축이 유행하였다. 그러나 30년 전쟁(1618∼1648)의 종전과 함께 프라하는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해 17세기 말까지 회복하지 못하였다. 이 시기는 바로크양식이 최고 정점에 이르렀던 때이다. 1880년 이후부터 도시 계획으로 오래된 건물 가운데 상당수가 철거되었는데, 특히 블타바 강 오른편에 있던 유대인 거주 지역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은 이 도시에 당시의 뛰어난 양식의 건축물들을 건설하는 계기가 되었다.


프라하에는 역사상 모든 시기에 나타난 각종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들이 모여 있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을 꼽으면 프라하 궁, 성 비투스 성당, 프라하 성 앞의 하라드차니 광장, 강의 왼쪽 제방에 있는 발드체인 궁전, 고딕 양식의 카를 다리, 성 십자가 교회의 로마네스크 원형 건물, 오래된 도시 광장 주변으로 고딕식 아케이드를 이루는 주택들, 스타레메스토에 있는 전성기고딕 양식의 성 제임스 프란체스코회 교회, 노베메스토의 19세기 말 건물과 도시 계획 등이다.


위험에 처한 유산으로 등재된 것으로는 성 앤 교회(St Anne's)가 있다. 성 앤 교회는 지난 2세기 동안 창고로 사용되었지만, 교회의 원래 구조와 대부분의 골격을 보존하고 있다. 내부에는 고딕과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벽화로 채워져 있으며, 목재 지붕 또한 고딕 양식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