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산을 배산으로 하고 남서로 흘러내린 산줄기의 남서향에 위치한 곳에 기와집과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 커다란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는 아산의 민속마을 외암(外巖)마을이 자리한다. 설화산을 등지고 반대편에 위치한 맹사성(孟思誠) 고택이 있는 중리(中里)마을과 함께 약 500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마을은 애초에 강씨와 목씨 등이 정착해 마을을 이루었다가, 조선 명종(明宗) 때 장사랑(將仕郞)을 지낸 예안이씨의 이정(李挺)이 이주해 오면서 본격적으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안동 풍산의 충효당(忠孝堂)에서 태어난 자손 중 막내아들이 외암마을로 오면서 예안이씨는 이 마을 사대부가의 중심을 이루었다. 이후 외암마을은 예안이씨의 씨족마을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후손들이 번창하고 많은 인재를 배출하면서 외암마을은 점차 양반촌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마을 이름은 이정의 6대손인 이간(李柬)의 호를 따서 ‘외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이 마을에는 예안이씨 사대부가의 기와집과 마을 주위의 논과 밭에 면한 곳에는 양반집에 소작을 붙여 살던 초가집들이 잘 조화를 이루며 자리하고 있다. 마을을 접어드는 곳에 비교적 큰 개울을 건너는데 이 곳이 마을의 초입 표시가 된다. 개울물은 설화산과 광덕산에서 흘러내리는 물로 서로 만나 흐르는 곳에 다리가 있고 다리를 건너면 물레방아간과 마을 장승이 마을길을 호위하듯 늠름하게 서 있다. 다리 아래 연자방아 앞의 반석(盤石)에는 이용찬(李用瓚)이 썼다는 ‘외암동천(巍岩洞天)’이, 옆으로는 기미년에 이백선(李伯善)이 썼다는 ‘동화수석(東華水石)’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어 당시의 선비들의 생활을 엿보게 하는 곳으로 마을 초입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그 옆으로 바위 암반에 둥그런 두 개의 구멍에는 가득 고인 개울물이 햇빛을 반사하고 있다. 이 구멍들은 지금의 현대식 다리가 세워지기 전, 나무다리를 이용한 시절에 냇물에 다리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튼튼하게 고정하기 위한 흔적이다. 이런 흔적을 보노라면 옛날의 마을 모습이 그리워지고 지금부터 전개될 마을 모습에 기대를 품게 된다.
개울을 건너게 하던 마을 어귀는 마을의 나쁜 일들이나 질병들이 물을 통해 차단될 것으로 믿었던 옛사람들의 지혜의 표현이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만나게 되는 장승 뒤로는 귀여운 문관석(文官石)과 동자석(童子石)을 갖춘 예안이씨의 선조 묘가 자리하고 있다. 옛사람들은 죽은 조상과 살아 있는 후손은 항상 같이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기본적으로 마을 지척에 조상의 묘를 두었다. 지금은 가능한 한 도시에서 먼 산 속에 묘를 두고, 몇 시간씩 차를 타고 찾아와야 한다. 지척에 존재하는 묘들은 우리에게 무언가 뿌리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일깨워준다. 특히 마을 어귀 밖의 구온양에서 유구와 예산으로 넘어가는 길가에 위치한 외암마을 서편의 소나무 숲에는 외암 선생의 묘소가 있는데, 마을을 지켜 주듯이 마을 앞에 모셔져 있다.
마을로 접어드는 길은 설화산에서 흘러내리는 냇가를 따라 마을을 우회하는 길과 왼편으로 돌아 들어가는 길을 이용하여 마을 골목길로 진입할 수 있다. 마을 가운데 돌담길을 따라 가면 서낭당의 역할을 하는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마을의 중심축을 이루는 길이 있다. 이 길 끝에 예안이씨 종가댁이 자리하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골목길 끝에 별도로 구획된 담장의 사당이 기다리고 있다.
마을에는 커다란 기와집으로 영암댁, 참판댁, 송화댁 등의 양반 주택과 7, 80여 채의 초가집들이 이들 집 주위에 조화롭게 어우러져 옛 모습을 유지한 채 남아 있다. 외암리가 일찍이 민속마을로 지정되면서 비교적 관리가 잘되었기 때문이다. 양반집은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모습을 잘 갖추고 있으며, 넓은 마당과 특색 있는 정원이 당시 양반의 생활상과 풍류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초가 역시 고풍스러운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돌담으로 연결된 골목길과 주변의 울창한 수림이 마을의 경관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
특히 이 마을에는 전통적인 수법의 상류, 중류, 서민 가옥이 함께 남아 있어서 마을의 형성이나 전통 가옥의 연구에 매우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또한 구불구불 이어진 돌담장에는 세월에 따라 이끼가 끼고 담쟁이 넝쿨이 자라, 여름에서 가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표정이 바뀌면서 더욱 멋스러워진다. 담장 안에 심어놓은 앵두나무, 감나무, 살구나무, 산수유나무 등에서 아름답게 꽃이 필 무렵, 돌담장의 자연스럽고 중후한 석재와 담장 위에 얹힌 부드러운 꽃의 모습은 전통 한옥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단풍이 들고 담장 위로 감이 주렁주렁 익는 가을이면 풍요의 멋을 느끼면서도 곧 다가올 한해의 뒤안길에서 함박 눈송이가 포근하게 내려 마을의 초가집과 담장을 조용히 감싸 안는 정경을 그리게 된다. 이 마을의 주요 볼거리인 돌담 너머로 집집마다 크고 작은 장독대의 부드러운 형태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또한 추녀 아래에는 집 안에서 옛날부터 사용하던 생활 도구들과 창고에 미처 들어가지 못한 해묵은 농기구들이 놓여 있는데, 뜰안의 경치와 어울려 금방이라도 과거의 시간으로 들어가 버릴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처럼 외암마을은 우리 민족의 살아 숨 쉬는 생활박물관을 체험케 하는 매력을 갖고 있다.
마을에서는 풍습으로 농경사회의 세시풍속인 느티나무제, 장승제, 달집태우기 등을 여전히 지내는 등 전통적인 모습을 이어오고 있어 무형 문화재적인 가치 또한 크다.
정확히 어느 때부터인지 몰라도 필자가 이 마을을 찾을 때면 으레 들르는 곳이 있다. 연엽주(蓮葉酒)를 만드는 종손 이득선씨의 집인 예안 이씨댁(중요 민속자료 195호)이다. 마음씨 좋은 우리네 할아버지 같은 종손은 술을 그리 즐기지도 않는 나의 발길을 강하게 이끈 것이다. 이 댁에서는 정이 담뿍 담긴, 손수 농사지은 은행을 대접받거나 인생 교훈을 덕담으로 들을 수 있기도 하다. 그보다도 나이가 들면서 술을 선물로 주거나 같이 마실 벗이 그리워져서 이곳을 찾는다는 게 더 옳은 대답인지도 모른다. 이유가 어떻든 우리 조상의 숨결을 느끼고 음미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예안이씨 참판댁의 대문채는 ‘一’자형 평면을 가진 여덟 칸 규모의 건물로, 솟을대문의 양쪽 기둥으로부터 돌담을 쌓아 성곽의 출입구처럼 시선을 인도하며 아름다운 공간을 구획하고 있다. 사랑채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도록 하는 배려에서 대문채는 약간 서쪽으로 틀어서 배치했다. 대문채의 가운데 칸에는 솟을대문을 두고 그 양쪽에는 헛간과 온돌방을 꾸며놓았다. 특히 솟을대문 기둥에서 밖으로 시작하는 돌담장에 있는 문간채의 전면에는 여백의 공간이 약간 만들어졌다. 그로 인해 문간채의 상단에만 창문을 두는 다른 가옥과는 다르게 세살문에 널찍한 분합문(分閤門)을 둘 수가 있었다. 특히 문간채의 온돌방에서 나오는 굴뚝은 전통 옹기로 구웠으며 둥근 문어머리처럼 생긴 연가(煙家)가 돌담과 어울려 아름다운 한옥 풍경을 연출한다.
문간채의 서쪽에는 일반적으로 문간채에서 보이는 단칸방에 곳간과 부엌이 있는데, 그 옆으로 청지기방으로 배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집도 툇마루와 별도의 일각문을 갖추고 있는데,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문간채는 행랑(行廊)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사용한다. 더욱이 담장을 대문채에 맞추어 둘러서 사랑채와 별도의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도록 동쪽 편에 길게 연결한 배려가 돋보이는 배치를 하고 있다.
외암마을에서 가장 한옥과 관련된 전통적인 것은, 사람 눈높이 정도로 집안을 보일 듯 말 듯하게 쌓은 돌담을 꼽을 수 있다. 흙 하나 없이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 많은 돌들이 물 흐르듯 흐르는 ‘S’자형 곡선의 골목을 만들고, 한옥과 어울려 운치를 더욱 깊게 한다. 이 가옥의 문기둥과 연결된 돌담의 섬세함과 우아함, 그리고 그 아래 적당한 위치에 자란 향나무, 산수유나무, 매화나무, 감나무 등의 나무들이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대문채에 들어서면 좌우 담장 아래로 조성된 화단에 향나무와 꽃나무가 여러 그루 심어져 있어, 꽃이 피는 봄날에는 사랑 전체가 환하게 느껴진다. 사랑채는 잘 다듬은 석재로 댓돌을 두 줄로 설치한 고급 구조로, 2벌대 기단에 두 군데의 돌계단을 두었다. 다섯 칸 규모의 ‘一’자형 평면에 팔작지붕으로 넙적한 자연 돌을 주추로 했고 그 위에 방형 기둥을 세웠다. 사랑으로 오르는 계단의 기단 갑석 아래 암키와 두 장을 포개 만든 굴뚝이 이채롭다. 굴뚝이 높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한, 한옥의 실용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공간은 크게 왼쪽부터 작은 사랑방, 대청, 큰 사랑방, 뒤편의 부엌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쪽의 세 칸 앞에는 반 칸 너비의 툇마루를 두었고, 온돌방 앞에는 고방과 골방을 두었다. 온돌방은 머름대를 댄 창틀에 2분합(二分閤) 덧문으로 꾸몄고, 동편의 골방 앞으로는 툇마루를 생략하고 전면에 넉살무늬 4분합(四分閤)으로 꾸몄다. 대청 방향으로는 툇마루에서 출입할 수 있는 띠살무늬 2분합문을 설치하여 평소에 마루로 오르면 이곳으로 출입하도록 되어 있다. 사랑 대청에는 사분합 여닫이문을 달아서 더운 여름이나 대소사가 있는 날에는 처마 밑에 걸려 있는 등자쇠에 문을 걸어놓으면 넓은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이와 같이 한옥은 벽을 가변형으로 만들어 여러 용도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기능성을 지닌다. 이와 더불어 나무의 짜임새 가구 기법은 우리 전통 한옥의 뛰어남을 보여준다. 사랑 마당으로 들어가는 솟을대문을 비롯하여 대문 칸의 동쪽으로도 작은 일각문이 있으며, 사랑채의 시선을 받지 않고 직접 안채의 중문으로 연결되는 일각문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 일각문은 씨족마을인 마을의 특성을 보여주고 대문채와 방향이 다른 동떨어진 곳에 마을이나 밭으로 가는 길을 내서 안채로 출입하는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려고 하지 않은 바깥주인의 심성을 느껴지게 한다. 이 집의 바깥주인이 자신의 일과 안주인의 일을 어느 정도는 분리해서 생각했다는 사실을 전통 한옥은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전통 한옥은 누구에게나 거기에 살던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 보게끔 하는, 여운을 주는 매력이 있다.
안채는 서쪽 앞이 개방된, 한쪽이 튼 ‘ㅁ’자형으로 가운데 안마당을 두고 감싸 안은 모습이다. 안마당에는 안채로 가는 길에 넓은 판석을 깔아놓아 운치를 더했는데, 비나 눈이 와서 마당이 질어지면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디딤돌을 깔아 놓았다. 이 디딤돌은 징검다리와 같아 어린 시절 마을 앞에 흐르는 개울을 마을 아이들과 줄 맞추어 껑충 껑충 뛰어 건너가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ㄱ’자형 안채에는 서편으로 대청과 연결된 두 칸 규모의 안방과 다락을 가진 부엌이 자리하고 있다. 안방과 윗방 사이에는 미닫이문을 달아 겨울에는 웃풍을 막고 여름에는 개방하여 시원하게 바람이 통하도록 꾸며져 있다. 안방의 앞에는 쪽마루를 두어 오르고 내리는 데 편리하도록 했다. 전면에 툇마루를 둔 안채 가운데는 띠살무늬 4분합문을 가진 대청마루가 있다. 안채가 남쪽을 향하고 있어서 뜨거운 여름 태양이 직접 방 안으로 내리쬐면 방이 더워지기 때문에 툇마루 방벽을 2분의 1 칸 정도 뒤로 물러 앉혀놓았다. 이러한 이유는 항상 처마 끝에 걸린 태양의 변화에 대응하여 쾌적한 실내 환경을 만들고자 했던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동쪽 편으로는 중문을 포함한 곳간을 두고 있는데, 앞이나 뒤뜰의 처마 아래에는 맷돌과 작은 항아리 등 다양한 생활 도구가 가득하다. 조그만 세간도 소중히 보관한 주인 덕분에 살림살이가 잘 보존되어 옛 생활 방식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전통가옥이다.
툇마루는 건넌방 동쪽 편까지 둘러 쳐져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외암리 사대부집들 안채의 형태가 서로 닮아 있다. 건넌방 동쪽 편으로 띠살무늬 2분합문이 있어서 뒤뜰에 쉽게 드나들 수 있다. 후원과 돌담 아래에는 산수유, 매화, 봉숭아와 같은 나무나 식물들이 피어 있어서 건넌방에서 기거하는 자녀들의 정서 함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태양과 바람이 막히는 것을 염려하여 한옥의 안마당에는 큰 나무를 심지 않고 꽃들을 심어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는 사랑 마당에 커다란 향나무나 단풍나무, 오동나무, 매화나무를 심는 것과는 사뭇 차이를 보인다. 이렇게 남자들의 공간은 그 공간대로 여자들과 자녀들이 있는 공간은 그 공간대로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전통 한옥에서 볼 수 있는 지혜요, 아름다운 안마당의 풍경이다.
이 가옥에서는 장독대를, 회벽으로 칠하고 둥근 강을 쌓고 기와 담으로 둘러친 담장에 두었다. 전라도에서는 이런 예를 쉽게 볼 수 있으나 충청도나 경상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한편 뒤뜰로 나가보니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다. 고향 마을에서 전통 한옥을 가보면 장독대 옆에는 으레 커다란 감나무가 호위하듯 서 있다. 늦가을 장독대에서는 맛있게 익어가는 장의 구수한 냄새가 피어오른다. 따뜻한 햇살에 달구어진 장독 뚜껑에는 홍시 몇 개가 올려져 있다. 이것이 우리 전통 한옥 뒤뜰의 풍경이다. 감이 익어가는 가을이 오면 분주해지는 뒤뜰은 여인들의 안식처였다. 담 밖을 쉽사리 드나들지 못했던 사대부 아낙네들은 풍성하고 포근한 질그릇 옹기에 허전한 마음을 달랬을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산(牙山) 외암(外巖)마을 (한옥의 미, 2010. 7. 15., 경인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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