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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내가 꼽은 한국의 자연절경

15-1107, 아산시, 외암 민속마을, 내가 뽑은 한국의 자연절경 1.

by 세인트1 2015. 11. 9.

우연히 알게된 이곳에서 하루밤을 지내기로 맘을 굳힌것이 약 한달전.

예약을 진행했으나 이미 마감이라는 연락에 대기자 순번에 등록한지 하룻만에 연락왔습니다.

예약 확정.

그리고 예정된 날짜를 기다리고,,

드디어 내일이면 갑니다.

근데 이게 웬일이랍니까?

그렇게 애타게 기다려도 오지않던 비가 내일부터 3일간 계속해서 100미리 이상 온다네요.

그렇다고 포기할수도 없고,,

그냥 진행 합니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미친건 저뿐만은 아닙니다.

그 빗속에서도 저같은 사람들이 엄청 많은걸 보고 놀랬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하나?

한편으로는 불쌍한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래에 있는 모든 사진은 핸폰으로 촬영한것들입니다.

비속에서 카메라 촬영을 할수없어서 모든 사진은 전화기로 촬영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

예약한 민박집에 들어갑니다.

혹시 이글을 보는 분들중 직접 체험을 하고싶은 분이 계시면 적극 추천합니다.

관광객들을 위한 편의 시설이 아니라

시골 사람들이 살고있는 집에서 함께 지내는 시골 생활 체험은 또다른 감동을 선사합니다.


참고로 이곳은 죽기전에 꼭 가봐야할 국내 자연 절경에 오른곳이기도 하지만

제가 뽑는 국내 최고의 자연절경 1호로 지정하고 싶습니다.

이곳은 또한 중요 민속 자료 236호로 지정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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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0년 전통이 살아 있는 마을


예안 이씨의 집성촌. 500여 년 전부터 형성된 전통 부락으로 현재 80여 호가 살고 있다. 중요 민속자료 제236호로 지정된 외암리 민속마을은 양반가의 고택과 초가집, 돌담이 어우러져 얼핏 한국민속촌을 연상시키지만 사람이 실제 기거하는 마을이며 참판댁, 병사댁, 감찰댁, 참봉댁, 영암댁, 종손댁 등 택호가 정해져 있다. 외암이라는 마을 이름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 숙종 때 학자인 이간(李柬)이 설화산의 우뚝 솟은 형상을 따서 호를 외암(巍巖)이라 지었는데, 그의 호를 따서 마을 이름도 외암이라고 불렀으며 한자만 외암(外巖)으로 바꾼 것. 또 하나는 인근 시흥역의 말을 거둬 먹이던 곳이라 하여 오양골로 불리다가 변하여 외암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암군수를 지낸 이상익이 살던 영암군수댁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건재 고택이라고도 불린다. 참판댁은 이조참판을 지낸 퇴호 이정렬이 살던 집인데 고종황제가 이정렬에게 하사해 퇴호거사(退湖居士)라고 쓴 사호현판이 아직 남아 있다. 또 송화군수를 지낸 이장현이 살던 송화댁, 성균관 교수를 지낸 이용구가 살았던 교수댁, 홍경래 난을 진압한 이용현이 살았던 병사댁, 이중렬과 그의 아들 이용후 부자가 참봉 벼슬을 지내서 이름 붙은 참봉댁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외암 이간의 묘소와 신도비를 비롯해 외암동천(巍岩洞天)과 동화수석(東華水石)이라는 글을 새긴 반석과 석각도 볼 수 있다. 


마을 뒷산인 설화산은 풍수지리상 불(火) 기운이 많아 설화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인공적으로 끌어와 여러 집을 통과하게 만듦으로써 불의 기운을 누르는 역할을 하게 했으며 이 물을 생활용수로도 이용하고 정원을 꾸미는 연못을 만들기도 하는 지혜가 돋보인다. 마을 대대로 터를 지키고 있는 물레방아도 재미난 볼거리다. 나뭇가지에 새가 지저귀는 소리, 돌담 안 의 개가 짖는 소리를 들으며 돌담을 끼고 마을을 돌다가 대문 열린 집이 있으면 조심스럽게 들어가보자. 관광객이 함부로 들어가 구경할 수 없는 집이지만 주인의 양해를 얻어 둘러볼 수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외암 민속마을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2010. 1. 15., 마로니에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