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캠핑카(RV) 여행/덴마크 그리고 네덜란드

덴마크의 조용한 시골도시 알보그_ Aalborg Denmark

세인트1 2016. 6. 27. 22:18

노르웨이에서 밤새 달려온 여객선에서 내린 시간이 이른 아침.

덴마크로 넘어온후 따로 들린곳은 없는듯하다.

계속 달리기 시작,,

중간 어느 저용한 도시에 들렸는데 무슨 도시인지 기억이 나질않는다.


결국 지나온 길과 여기저기 흔적을 위져본 끝에 겨우 도시 이름을 찾았다.

도시가 어딘지도 모르고 들어가다니,,

이것이 캄핑카 여행의 장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곳 도시에 대해선 별로 아는게 없다 

그래서 덴마크 나라에 대해서 적는게 좋을것 같다.



덴마크 왕가의 정식명칭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Schleswig-Holstein-Sonderburg-Glücksburg)이다. 독일과 북유럽쪽 왕가들은 신성 로마 제국 내의 수많은 제후국들간의 정략결혼으로 이렇게 성이 엄청나게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17][18]


덴마크 왕실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왕실로, 현 여왕인 마르그레테 2세는 덴마크의 프레데리크 9세와 스웨덴의 잉리드 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세 딸 중 장녀다. 잉리드 왕비는 현명하고 강인했는데 히틀러에게 항전하는 의미로 전쟁 중에 마르그레테를 유모차에 태우고 시내 길거리를 다닌 적도 있었다. 프레데리크 9세 부부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아들을 못 낳을 가능성이 높아지자 다른 친척 가문의 아들에게 왕위가 돌아가는 것을 막고 장녀 마르그레테가 즉위하도록 힘썼다. 다행히 네덜란드나 영국의 여왕 즉위에 영향을 받아 1953년. 장자승계 원칙을 깨트린 새로운 헌법 개정이 이루어짐에 따라 마르그레테가 왕세녀가 될 수 있었다. 마르그레테 2세는 그림과 디자인에 일가견이 있으며, 일주일에 하루는 그림을 그리는 날로 쓰는데 여왕으로서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날이라고 한다. 또한 화려한 패션을 지향하는데 좀 독특한 걸 좋아하는 편으로 유럽 왕가 멤버들 중에서 그리스의 소피아 전 왕비와 더불어 스타일 좋기로 유명하다. 데이지꽃을 좋아해서 붙여진 '데이지 여왕'이라는 별명이 있다. 마르그레테 2세 본인은 1940년 생인데 키가 181cm 로 당대 여성 기준으로 보면 그냥 큰 게 아니라 완전히 거인이다. 큰할머니 그나마 이 장대한 키조차 나이를 먹어서 줄어든 거고 젊은시절에는 이보다 더 컸을 것임을 감안한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위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아들인 프레데리크 왕세자보다도 키가 더 크다. 덧붙여서 현재는 2009년에 왕위계승법이 개정되어서, 남녀를 불문하고 장자 장녀승계 원칙. 즉 첫째의 성별과는 무관하게 계승권이 주어지는 것이 법적으로 확립되었다.


마르그레테 2세의 부군인 헨리크 공은 프랑스 백작가문 출신으로 덴마크어, 프랑스어, 영어, 중국어, 베트남어를 구사하는데 덴마크어는 늦게 배운지라 발음이 어색하고 프랑스 억양이 강해서 덴마크인들이 아직도 놀린다(…) 그래도 덴마크어 구사 능력이 상당해서 발음이 어색한 거 외엔 딱히 다른 얘기는 없다. 사생활이 깨끗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아내 마르그레테 2세와의 금실도 좋은 편으로 유럽 여왕의 부군들 중 유일하게 외도하지 않은 부군이다. 그러나 과거에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개고기를 즐겨먹는다고 하여 덴마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지만 잘 넘어갔다.


마르그레테 2세는 헨리크 공과의 사이에서 1968년에 프레데리크 왕세자를, 1969년에 요아심 왕자를 낳아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그러나 1972년에 부왕인 프레데리크 9세가 서거하고 여왕으로 즉위하면서 공무를 수행하기 위해 아직 어린 아들들의 육아를 친정 어머니인 잉리드 왕비에게 맡겼다. 장남 프레데리크 왕세자는 어릴 때 어머니의 돌봄을 못 받은 탓에 맺힌 게 있는 모양인지 "어머니의 정을 잘 느끼지 못했다."고 말한 바 있다. 여담이지만 영국의 찰스 왕세자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래도 엘리자베스 2세와는 달리 자식 농사는 진짜 잘한 편이다.


장남 프레데리크 왕세자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요트 선수로 참가했다. 경기가 끝나고 시드니의 바에 들렀는데 여기서 부동산 회사의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고 있던 스코틀랜드 혈통의 오스트레일리아 태즈메이니아 출신의 평민 여성 '메리 엘리자베스 도널드슨'과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졌다. 곧 프레데리크 왕세자와 메리의 '올림픽 사랑'은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19] 메리는 3년 반 동안 이어진 왕비 소양 교육을 끝내고, 덴마크어도 열심히 배워 덴마크 의회의 승인을 얻은 끝에 2004년 5월 14일에 코펜하겐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참고로 덴마크 왕가의 이 결혼 소식은 한국과도 무관하지 않다. 메리의 아버지 존 도널드슨은 옥스퍼드에서 수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결혼 이야기가 오가던 2004년 당시에는 한국 카이스트에서 교환교수로 근무하고 있었다. 프레데리크 왕세자는 메리와 결혼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한국에 있던 도널드슨 교수에게 보냈으며, 이에 도널드슨 교수는 한국의 고급 전통 한지에 결혼을 승낙한다는 내용을 써서 프레데리크에게 답장을 보냈다.


프레데리크 왕세자와 메리 왕세자빈은 결혼한 이듬해인 2005년 10월에 장남 크리스티앙 왕세손을 낳았다.[20] 이후 2007년 5월에는 장녀 이사벨라 공주를 낳았고, 2011년 1월에는 왕실 최초의 쌍둥이인 빈센트 왕자와 요세피네 공주를 낳았다. 그래서 현재 2남 2녀를 두고 있다. 특히 한국 인터넷상에서는 크리스티앙 왕세손이 "근엄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래서 2012년에 프레데리크 부부가 내한했을 때에도 온라인상에서는 "근엄이 부모가 왔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였다.


그러나 메리 왕세자빈이 일단 겉으로는 왕세자빈으로서의 역할을 잘 하고는 있지만, 호사가들은 그녀의 개인비서의 주업무가 "메리 왕세자빈의 쇼핑백을 들어 나르는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21] 실제로 메리 왕세자빈은 명품 의류와 모피코트를 좋아하며, 특히 핸드백과 구두에 관심이 많아 한 구두가게에서 단번에 7000유로(약 1000만원)어치의 구두를 사재기한 적도 있었다. 덴마크 언론들은 쇼핑중독 증세를 보이는 메리 왕세자빈을 빗대 "럭셔리 메리"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으며, 심하게는 "스칸디나비아의 이멜다 마르코스"[22]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실제로 신혼 초에 메리 왕세자빈은 과도하게 명품 쇼핑에 집착해서 그녀에게 세금으로 지급된 연봉의 상당수를 쇼핑하는데 지출하기도 했으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대중 앞에서 예쁜 모습을 보이려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도 말이 많았다. 덴마크 정치권에서는 왕자, 공주가 너무 많아 연봉받는 왕실 가족수를 제한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