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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좋은 여행 상식

죽기전에 꼭 가봐야할 자연절경 _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역사 1

by 세인트1 2014. 8. 31.

제가 방문했던 대부분의 여행지가

인디언들과의 관계가 깊숙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거의 모든 여행지가 인디언의 문화와 직간접적 연결 고리가 있었으며

특히 챠코 문화는 대부분의 인디언 부족들에게서 발견된다는 특이한점에 또한 놀랄수 있었습니다.


나바호 인디언들이 거주하는 인디언 보호구역은 애리조나를 중심으로하여 뉴멕시코, 유타주를 연결하는 황량한 지역으로서 대략 72,000 제곱키로미터 인데

이면적은 대한민국 전체 면적인 100,000 제곱키롭미터에 육박하는 어마 어마한 면적입니다.

또한 이곳은 나바호 네션이라하여 나바호 인디언들 스스로 자치국이라 칭하면서 그들 나름의 정부역할을 하며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곳 철망 안으로 들어가는건 연방정부와 나바호 정부의 허락없이는 불가능하며 사전 허가없이 출입하는 사람은 침입자로 간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바호 인디언들이 아메리카대륙의 원주민으로 알고있으나 그건 사실과 틀립니다.

나바호 인디언과 아파치 인디언이 북아메리카를 대변하는 인디언이라는 사실은 맞으나 그들이 원주민은 아닙니다.


그들역시 서기 1300년경 멀리 캐나다와 알라스카에서 이주해온 아타바스칸의 일부로 알려져있고,

그 아타바스칸들은 더앞선 수만년전에 알라스카와 러시아 땅이 갈라지기전 아시아에서 이주해온것으로 알려져잇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주해오기 이전부터 북미에서도 인간의 흔적이 잇었음이 발견되는데 그의 원초적인 사실근거는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특이한 점은,,, 인디언 보호구역을 나타내는 철조망들이 수백, 수천 키로에 걸쳐 설치되어있으나 

철조망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없다는 점입니다.

바위가 있으면 바위위에, 

물이 있으면 물위에 철조망을 설치하여 조금도 손해보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고,

거의 일직선을 유지하고 있다는건 참으로 신비스러울 정도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은,, 백인들이 인디언들에게 보여준 땅에 대한 집착을 인디언들이 되돌려 줬을것이라는 생각입니다.


















2007년 미국 『네이티브 피플』지는 매년 봄 연발총을 든 사냥꾼들이 버펄로 집단 사냥을 벌이고 있다는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가죽만 벗겨진 채 평원에서 무더기로 썩어가는 버펄로의 모습을 본 미국 인디언 사회가 들끓었습니다. 

서부 점령 시대에 벌어진 대규모 버펄로 사냥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인데, 인디언들에게 버펄로는 짐승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유명한 인디언 추장 ''시팅 불''은 미국을 ''버펄로의 나라''라고 했을 정도이며, 

고기를 말려 식량을 삼았고 가죽으로 옷과 신발을 만들었습니다(발등을 U자로 꿰맨 모카신은 인디언의 가죽신에서 유래되었다). 

따라서 당시 백인들의 버펄로 사냥은 인디언에 대한 대규모 학살의 전주곡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인디언에게 사냥이란 먹을 것을 준 자연에 감사하고 죽은 동물이 다시 회생하여 돌아올 것을 기원하는 

의례였습니다. 그들은 짐승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대''라고 부르며 소중히 여깁니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평등하게 어우러질 때 그들은 조화로운 삶을 노래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자연의 이치를 버리고 자연 위에 군림하려 드는 자들 앞에서 이 땅은 황무지가 되어갔다. 


미국 정부는 "신이 아메리카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종교적 슬로건까지 내세우며 

인디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습니다. 


나바호족의 성지 모뉴먼트 밸리에서 벌어진 학살은 인디언 잔혹사의 대미를 장식한 사건이었습다. 

지금은 ''관광객들의 천국''으로 알려진 이곳에서 

나바호족은 화포를 갖춘 미국 군대에 포위되어 쓰러져갔습니다. 

결국 1만여 명의 인디언 포로들이 뉴멕시코 주 보스케레돈도 보호구역으로 500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을 맨발로 끌려갑니다. 

이 비참한 강제이주의 여정은 ''먼 길(Long Walk)''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1장 참으로 아름답구나_캐니언 드 셰이 국립기념지, 26~27쪽)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당시의 인디언 수는 1,500만 명이었습니다. 

현재 인디언보호구역의 인디언을 모두 합해도 100만 명이 채 안 돼 

미국 전체 인구의 1퍼센트에도 모자라는 숫자입니다. 

그나마 이들 대부분은 실업자와 마약중독자, 극빈자로 전락해 있습니다. 

모뉴먼트 밸리 나바호 부족공원(2장 별들이 땅으로 떨어지리)은 

인디언 자치 정부가 세워져 있고 보조금 지급, 면세 혜택 등의 제도가 운용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성지를 지키려 피를 흘리며 싸웠던 그곳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을 팔며 미국 정부의 국립공원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입니다. 


나바호족은 부자가 되는 것을 무척 경계합니다. 

부자가 된 사람은 틀림없이 가족과 이웃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을 것이고, 

다시 말해 어려운 가족과 이웃을 챙기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부자가 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있습니다. 


서구와 구대륙의 문화가 물질과 축적을 숭상하는 문화라면 

인디언 사회는 나눔을 숭상하는 문화라고 할 만큼, 그들은 물질을 이웃과 나누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인디언 사회에는 기본적으로 부자와 가난한 자가 없습니다. 

물질을 보는 태도가 자본주의 사회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가난은 우리가 가진 들소의 머릿수가 아니라 함께 나눌 

마음의 여유가 없음을 이르는 말이란다."

(5장 이름으로 우주를 만들다_뉴스페이퍼 록 국립역사지구, 97쪽) 


그뿐이 아닙니다. 

인디언들은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자신의 형제요, 친척이라 생각했고 대지를 어머니라 불렀습니다. 

"어머니 대지를 걷는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의 얼굴을 밟는 것이다"

(3장 나와 연결되지 않은 것은 없다_캐니언랜즈 국립공원, 56쪽)

라고 하여 걸어 다닐 때도 조심해서 걸어 다녔습니다.

 

결코 뒤꿈치를 쿵쿵거리며 걷는 법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인디언들은 여성을 매우 존중했습니다. 

여성을 구타하는 남자는 사회적으로 질타를 받았고 

심한 경우에는 그 사회의 각종 모임으로부터 쫓겨날 정도로 엄격했습니다. 

왜냐하면 여성은 생명을 낳고 기르는 ''신성한 존재''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일상적인 삶과 영적인 생활은 언제나 하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