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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인디언의 슬픈 역사,, #1

세인트1 2014. 5. 3. 12:50

2007년 미국 『네이티브 피플』지는 매년 봄 연발총을 든 사냥꾼들이 

버펄로 집단 사냥을 벌이고 있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가죽만 벗겨진 채 평원에서 무더기로 썩어가는 버펄로의 모습을 본 미국 인디언 사회가 

들끓었다. 

서부 점령 시대에 벌어진 대규모 버펄로 사냥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인디언들에게 버펄로는 짐승 이상의 존재였다. 


유명한 인디언 추장 ''시팅 불''은 미국을 ''버펄로의 나라''라고 했다. 

고기를 말려 식량을 삼았고 가죽으로 옷과 신발을 만들었다(발등을 U자로 꿰맨 모카신은 인디언의 가죽신에서 유래되었다). 

따라서 당시 백인들의 버펄로 사냥은 인디언에 대한 대규모 학살의 전주곡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인디언에게 사냥이란 먹을 것을 준 자연에 감사하고 죽은 동물이 다시 회생하여 돌아올 것을 기원하는 의례였다. 

그들은 짐승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대''라고 부르며 소중히 여긴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평등하게 어우러질 때 그들은 조화로운 삶을 노래한다. 

그러나 자연의 이치를 버리고 자연 위에 군림하려 드는 자들 앞에서 

이 땅은 황무지가 되어갔다. 


미국 정부는 "신이 아메리카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종교적 슬로건까지 내세우며 

인디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나바호족의 성지 모뉴먼트 밸리에서 벌어진 학살은 인디언 잔혹사의 대미를 

장식한 사건이었다. 

지금은 ''관광객들의 천국''으로 알려진 이곳에서 

나바호족은 화포를 갖춘 미국 군대에 포위되어 쓰러져갔다. 

결국 1만여 명의 인디언 포로들이 뉴멕시코 주 보스케레돈도 보호구역으로 

500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을 맨발로 끌려갔다. 

이 비참한 강제이주의 여정은 ''먼 길(Long Walk)''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았다.

(1장 참으로 아름답구나_캐니언 드 셰이 국립기념지, 26~27쪽)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당시의 인디언 수는 1,500만 명이었다. 

현재 인디언보호구역의 인디언을 모두 합해도 100만 명이 채 안 돼 

미국 전체 인구의 1퍼센트에도 모자란다. 

그나마 이들 대부분은 실업자와 마약중독자, 극빈자로 전락해 있다. 

모뉴먼트 밸리 나바호 부족공원(2장 별들이 땅으로 떨어지리)은 

인디언 자치 정부가 세워져 있고 보조금 지급, 면세 혜택 등의 제도가 운용되고 있다. 

자신의 성지를 지키려 피를 흘리며 싸웠던 그곳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을 팔며 미국 정부의 국립공원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이다. 


친환경 생태시대에 재발견하는 인디언 문명의 가치 


나바호족은 부자가 되는 것을 무척 경계한다. 

부자가 된 사람은 틀림없이 가족과 이웃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을 것이고, 

다시 말해 어려운 가족과 이웃을 챙기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부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서구와 구대륙의 문화가 물질과 축적을 숭상하는 문화라면 인디언 사회는 

나눔을 숭상하는 문화라고 할 만큼, 그들은 물질을 이웃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인디언 사회에는 기본적으로 부자와 가난한 자가 없다. 

물질을 보는 태도가 자본주의 사회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가난은 우리가 가진 들소의 머릿수가 아니라 함께 나눌 

마음의 여유가 없음을 이르는 말이란다."

(5장 이름으로 우주를 만들다_뉴스페이퍼 록 국립역사지구, 97쪽) 


그뿐이 아니다. 

인디언들은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자신의 형제요, 친척이라 생각했고 

대지를 어머니라 불렀다. 

"어머니 대지를 걷는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의 얼굴을 밟는 것이다"

(3장 나와 연결되지 않은 것은 없다_캐니언랜즈 국립공원, 56쪽)

라고 하여 걸어 다닐 때도 조심해서 걸어 다녔다. 

결코 뒤꿈치를 쿵쿵거리며 걷는 법이 없었다. 

당연히 인디언들은 여성을 매우 존중했다. 

여성을 구타하는 남자는 사회적으로 질타를 받았고 

심한 경우에는 그 사회의 각종 모임으로부터 쫓겨났다. 

왜냐하면 여성은 생명을 낳고 기르는 ''신성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의 일상적인 삶과 영적인 생활은 언제나 하나였다. 

뉴스페이퍼 록 국립역사지구(5장 이름으로 우주를 만들다)의 

8,000년 역사가 담긴 ''신문 바위'' 암각화, 

또는 나인 마일 캐니언 암각화 지구(9장 용서하고 사랑할 시간)의 

''그레이트 헌트'' 암각화에서 그들의 일상적 삶이 곧 종교요, 

기도인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