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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1-14, Bosque Del Apache National Wildlife Refuge #4

세인트1 2014. 2. 10. 09:03


아래글은 펌글입니다.


옛날의 뉴멕시코는 아나사지(Anasazi) 인디언 들만이 살던 땅이였다. 서기 800년에서 1300년 사이에는 아나사지 인디안이 뉴멕시코 서북부에 있는 챠코케년지역을 중심으로 도시를 형성해서 챠코문명(Chaco Culture)을 이루며 살았다. 그러나 1276년부터 1299년사이에 있었던 심한 가뭄으로 그들은 챠코 케년의 도시를 버리고 리오그란데 강가로 내려와서 소 집단을 이루는 푸에블로(Pueblo)를 형성해서 농사를 위주로 하면서 흩어져 살게 되었다. 서기 1500년경에는 캐나다 지역에서 살던 나바호(Navajo)와 아파치(Apache) 인디언이 뉴멕시코로 이주해 내려왔다. 나바호인디언은 리오그란데강의 서쪽지역에 정착했고 아파치 인디안은 뉴멕시코의 남부, 동부에 흩어져 살았다.



  • 스페인의 정복
    컬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후 스페인은 지금의 멕시코 시티(Mexico City)지역을 정복하여 식민지인 나라를 만들어 이름을 누에바 에스파냐(Nueva España), 영어로 번역하면 뉴스페인(New Spain)이라 하고 총독을 보내어 다스리게했다.
  • 뉴멕시코 쥬니 푸에블로 지역에 시볼라(Ciola)라고 하는 금으로 장식된 도시가 있다는 거짓 소문을 듣고 1540년 코로나도(Coronado)장군을 뉴멕시코의 쥬니 인디언이 사는곳을 답사하게 했다. 
  • 그들은 헛 소문을 확인한뒤에도 서쪽으로 탐험을 계속해서 그랜드 케년과 콜로라도 강을 발견하기도 했다. 
  • 본격적인 뉴멕시코 개척 원정은 1598년 스페인 왕 필립2세의 명에 의해서 오냐테(Oñate)장군의 원정팀으로 시작되었다. 리오그란데 강 상류 지역에 스페인 이주민을 정착시키고 인디언 들에게 기독교를 선교하는 활동도 하게 했다. 
  • 그러나 새로운 종교를 거부하는 인디언의 세력도 컸다. 아코마(Acoma)인디언 들과의 갈등으로 10여명의 스페인 사람들이 죽게되자 보복으로 25세 이상의 남자들은 전부 그들의 발목 하나를 잘라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 1610년 스페인 사람들은 상그라데그리스도 산 밑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수도로 정하였다. 이름을 산타페(지금의 샌타페이:Santa Fe)로 지었다. 미국에서 제일 오래된 수도(首都:Capital City)가 이때 된 것이다.



  • 인디언의 반란
    스페인 사람들은 뉴멕시코의 인디언의 문화를 말살하려는 정책을 썼다. 
  • 인디언은 그 반발로 1680년 8월 10일 일제히 봉기하여 성당을 불사르고 사제를 죽이는 반란을 일어켰고 이로 인해 400여명의 스페인 사람은 목숨을 잃었고 살아 남은 사람들은 모두 지금의 멕시코 국경 지역으로 도망쳤다. 
  • 그러나 몇년뒤 인디안의 지도자가 죽고나자 스페인 사람들은 다시 이땅을 손쉽게 무혈로 되찾고 만다. 
  • 1692년 부터 뉴멕시코는 다시 스페인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스페인 정복자 들은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식민 정책을 보다 더 온건한 정책으로 바꾸었고 기독교도 인디안에게 많이 전해지게 되었다.


  • 멕시코의 독립
    스페인의 지배하에서 200여 년이 지난 1821년, 스페인의 통치 아래 있던 뉴스페인은 스페인으로 부터 독립하여 멕시코라는 이름으로 독립 국가를 선언하게 된다. 
  • 따라서 뉴멕시코는 신생 독립 국가인 멕시코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과 25년밖에 안 된다. 
  • 1846년 멕시코와 미국간의 영토 분쟁으로 전쟁이 일어났다. 2년뒤 전쟁이 끝나고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Treaty of Guadalupe Hidalgo)에 의거 이곳 뉴멕시코는 미국의 영토가 되었다.


  • 미국 영토로서의 뉴멕시코
    미국의 영토가 된이후 이곳 인디언은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 나바호 인디언과 미국인 서부 개척자 사이에 마찰이 생기자 겔럽(Gallup)지역에 살고 있던 나바호 인디언을 300마일 떨어진 페코스강이 있는 포트섬너(Fort Sumner)로 강제 이주 시킨 일이 있었다. 
  • 이 계획을 반대한 나바호 인디안은 완강히 맞서 싸우다가 캐니언디셰이(Canyon de Chelly:애리조나 주에 있음)에 도주하여 숨어 버리자 킽 칼슨(Kit Carlson)대령이 지휘하든 군인들은 민가를 불태우고 가축을 잡아 죽이는 보복을 가해서 나바호 인디언의 항복을 받아 내고 강제 이주를 하는 장거리 행진, 롱 워크(Long Walk)를 하게 하였다. 
  • 300마일(480km) 되는 먼길을 겨울철에 8-9000명의 인디안은 걸어서 이동 하는 가운데 200여명이 기아와 추위로 인해 죽었다. 새로 마련한 인디안 보호 구역에서 농사를 짓고 새로운 개척을 하려 했으나 토지와 기후 조건이 맞지 않아서 계속 기아와 질병으로 많은 인디안이 죽어갔다. 
  • 결국 4년뒤1868년 미국 정부에서는 이 계획이 잘못 된것임을 인정하고 나바호 인디안을 본래 고향, 뉴멕시코 서북부로 돌아가게 허용했다.
    뉴멕시코는 신개척지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게 되었다. 
  • 카우보이를 위시해서 광부, 철도공사 노동자, 노름꾼과 각종 상인들이 늘어나면서 범죄도 늘어나 무법천지가 되는듯 했다. 미국의 어느 장군은 죠크로 말하길, ‘미국은 멕시코와 다시 전쟁을 해서 골치꺼리의 뉴멕시코를 도로 멕시코가 가져가게 해야된다’고 말했다 고한다. 빌리더키드(Billy the Kid)는 이 당시 무법의 서부 세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전해오고 있다.


  • 미국 합중국 연방가입
    1912년 1월 드디어 뉴멕시코는 미국의 47번째의 주로 승격된다. 
  • 미국영토가 된지 62년만이다. 한달 뒤에 애리조나가 48번째 주로 들어와서 미국 국기 성조기의 별이 1959년 알래스카주가 가입될때까지 47년동안 성조기의 별이 48개로 되어 있었다. 
  • 뉴멕시코의 자연풍경에 매력을 느끼고 많은 화가, 사진작가, 저술가등이 산타페와 타오스에 몰려왔다. 
  • 뉴멕시코의 좋은 날씨가 페결핵 치료에 좋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요양원 시설이 앨버커키시에 늘어났고 인구도 불어 났다. 넓은 평지가 많은 이곳은 공군기지를 만드는데 좋은 조건이어서 2차대전 시기에 세 개의 공군기지가 들어서게 되었다. 
  • 화이트샌드 미사일 시험장(White Sands Missile Range)도 생겼다. 
  • 험한 계곡이 있는 산속에 비밀유지 하기 좋은 지리 조건을 가춘 로스 알라모스(Los Alamos)에는 원자탄 개발을 위한 연구소가 생겼고 1945년 7월16일 뉴멕시코 남부 사막에서 최초의 원자탄을 터뜨리는 실험을 하여 핵시대의 문을 연것도 뉴멕시코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차대전때에 참전 용사들 중에 나바호 인디안은 암호병으로 활약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 미국군은 일본 사람들이 나바호 말을 알지 못하는점을 이용해서 나바호말을 암호에 대신해 써서 미국군의 기밀 유지를 할 수있었다. 한국전쟁때도 뉴멕시코는 큰 기여를 했다. 
  • 뉴멕시코 주에서도 많은 젊은이가 한국전에 파병하여 싸웠는데 그중에서 189명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 갤럽(Gallup)에 사는 일본인 2세인 히로시미야무라(Hiroshi Miyamura)씨는 한국전쟁에서의 공로로 아이젠하워 대통령으로 부터 명예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