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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는 이전에는 수렵, 채취, 어로 생활을 하던 원시적인 사회였는데 갑자기 AD13세기 말경 이후(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시대)에 백여개의 성이 축조되면서 국가 규모의 성장이 일어나는가 하면 논농사 밭농사 등 농작물 재배가 이루어지는 획기적인 상황이 일어났는데 이는 외부의 자극 없이는 더군다나 외부의 집단 세력의 진입이 없고서는 세계문명 발전사에 있어서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갑작스런 변화는 일본 본토에서도 BC3세기부터 AD3세기까지의 야요이 시대와 AD3세기부터 AD5세기 까지의 고분 시대에도 일어났다. 이 같은 갑작스런 변화를 오키나와의 역사는 일본 본토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왜곡하고 있다 한반도 세력의 진입을 부정하고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대륙 또는 중국의 영향에 의한 것이라고 왜곡하고 있다 따라서 오키나와의 홍길동 세력과 삼별초 세력의 진입 사실 역시 부정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부정은 한국 학자들의 일본 본토역사에서의 한반도 영향 부정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이와 같이 갑작스런 이러한 현상에 대한 합리적인 역사적 설명을 일본 측에서는 내놓지 못하고 있으나, 이는 왜곡된 것으로써 한반도의 영향을 부정하는 전통적인 일본의 역사 기법인 것으로 오히려 이후에는 오키나와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발전하였다는 역시 마찬가지의 전통적인 역사 왜곡 기법을 동원하여 오키나와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 현재의 실정이다.
하지만 당시의 국가 규모의 성장이 일어나면서 축조한 여러 성들은 중국이나 일본의 방식이 아닌 한반도 고려의 축성 기술에 의한 것이며 이후 발굴된 유물 또한 전통적인 고려 양식이다. 특히 1994년 오키나와 우라소에시의 우라소에 성과 우라소에 요도레(성의 암벽을 파서 만든 왕실의 무덤)에서 암기와가 뱔견되었는데 이것은 고려 특유의 어골무늬(물고기 등뼈 무늬)와 함께 ‘계유년고려장인와장조’(癸酉年高麗匠人瓦匠造)라는 명문이 뱔견되었다. 이는 “계유년 고려의 기와장인이 만들었다”는 뜻이다. 또한 수막새에는 고려시대 삼별초가 강화도에서 진도로 쫓겨 가서 건설한 용장산성의 연꽃무늬와 제작기법과 형태가 동일한 수막새가 대량 발견되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삼별초와의 관련성이다. 계유년은 1273년으로써 삼별초가 강화도에서 진도로 다시 제주도에 와서 여몽 연합군에 의하여 사라진 바로 그해인 것이다. 이는 잠시 뒤에 살펴 볼 일이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살펴 볼 흥미로운 사건은 또 하나의 한반도와의 관련성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홍길동 이야기이다.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 보다는 한반도 국가와의 교류가 두드러진다. 일본 본토의 억압적인 교류에 비하여 한반도 고려 및 조선과의 교류는 적극적이었다. 이를 두고 당시 일본 본토보다는 한반도 및 중국과의 교류가 더 필요해서고 중요하였다고는 하지만 머나면 한반도와의 교류는 다른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오키나와 류큐국(유구국)의 사절단이 우리나라에 처음 온 것은 고려말인 1389년이며, 조선 개국 원년 1392년, 류큐 국왕의 명을 받을 공식 사절단이 조선을 예방하여 태조 이성계를 알현하였다. 태조는 사절단대표에게 정5품, 수행원들에게 정6품에 준하는 대우를 베풀었다. 류큐는 조선을 최초로 승인한 국가인 셈이다. 이후 조선왕조에서는 40회의 사절단을 보내올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고려사절요』 등을 검토해 보면, 고려시대 이래 중세 조선과 오키나와(유구국)의 교류 흔적을 수백 건의 기록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특히 조선과 오키나와 민중의 표류 및 난파 기록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더군다나 오키나와엣 멀리 떨어진 오키나와 부속 섬인 야에야마, 미야코 섬들과 오키나와 본섬, 일본 본토 열도 큐슈, 대마도를 거쳐 2년여 만에 조선으로 귀환한 제주인 김비의의 기록도 있다. 이는 주로 조선 남서해안의 어민들이 항해 중에 태풍과 풍랑을 만나 오키나와까지 표류했다 것으로 이러한 오키나와 행을 가능하게 한 것은 ‘쿠로시오 해류' 때문이었다.
조선이 개국되던 시기에 축하 사절이 왔으며 조선 성종시에 불경인 고려판대장경 방책장경을 받아 슈리성 연못에 1502년 당집인 장경각(藏經閣)을 지어 소중히 보관하였는데 그 당집인 장경각(藏經閣)이 ‘베자이텐도우(弁財天堂)’이다
만자모 방문했을때 마을회관에서 우연히 마주한 음악 연주하는 학생들.
오키나와하면 등장하는 사진의 장소.
실제 방문해보니 우리나라 동해안보다 못하다.
이곳은 말그대로 물고기들이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고 있는 장소.
맨발로 바닷속에 들어가보니 물고기들이 도망갈 생각을 안한다.
정해진 시간쨈에 급히 서둘러 나왓지만 ,,
그래도 볼건 다본듯.
오키나와 공항.
이게 왜 여기 들어와있나 그랴.
기왕 들어와있으니,,
겨울이 오기전에 여행할 계획을 세우는 중입니다.
스웨덴과 핀란드를 다녀올 생각입니다.
일반차로 다닐건지 아님 캠핑카로 다닐건지 그조차 아직 결정은 못했지만
가능한 이번 늦가을엔 다녀올 생각입니다.
이곳역시 언젠가 꼭 한번 다녀와야겠노라 생각했던 곳입니다.
이러한 계획은 최소한 두어당 전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시간이 좀 척박한거 같은데,,
같이 갈 사람이 한두면 쯤 있으면 캠핑카로 움직이고 안그러면 작은차로,,
하지만 이런곳은 캠핑카로 다니는게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유리합니다.
차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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