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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나홀로 배낭 여행_국외

오키나와 그리고 삼별초와 홍길동

by 세인트1 2019. 9. 4.


펌글_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 당시 오키나와 여자 사범학교와 현립 제일고등여학교의      학생과 교직원들로 구성된 종군 간호부 부대 '히메유리 부대'의 전사한 204명의 위령탑인 '히메유리의 탑' 그리고 비참한 전쟁 영상과 귀중한 증언과 자료들을 전시한 '히메유리 평화기념자료관'이 있다.


​당시 히메유리 부대의 여학생들은 미군에게 포위당하자 어두운 동굴 속에서 본토 일본    군의 강요에 의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좋은 의미로는 오키나와 거주민들은 물론 일본 본토인들에게도 전쟁 희생을 기려  평화를 추구하는 의미이나, 엄밀한 의미로는 전쟁의 피해자라는 희생만을 유달리 강조하는 일본 본토 민족성을 그대로 나타내는 장소이나 이에 반하여 오키나와 거주민들에게는 더욱 더 전쟁과 본토로부터의 희생을 기리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겠다. 


평화기념공원 입구 쪽에 횃불을 형상화 모양의 흰색으로 된 ‘오키나와 평화기원당’이 있고 1975년 8월 ‘한국인 위령탑 건립위원회’에 의하여 건립된 ‘한국인 위령탑 공원’이 있다.


​또한 입구에는 한국 각지에서 가져온 돌로 석축을 쌓아 둥글게 만든 단이 있고 석축 벽에 ‘한국인 위령탑 건립위원회’ 명의의 추모사가 새져진 동판이 있고, 그 왼쪽에 같은 글을 일본어와 영어로 새긴 동판, 오른쪽에 노산 이은상이 쓴 추모 동판이 있다. 위령탑 앞의 광장 한가운데 화살표는 우리나라 서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평화공원 안에는 20만명(2018년6월 현재 241,525명) 희생자의 이름을 새겨 넣은 검은색 위령비 ‘평화의 초석‘이 있는데 한국인 징병 희생자 1만명 중 462명(조선인(한국인) 380명, 북한출신 조선인 82명)의 이름도 있다. 그러나 나머지는 신원을 알 수 없는 한스러운 우리나라 아픈 시대의 역사의 현장.


한국인을 기리는 시설이 있고 이를 찾아서 기려야 할 역사적 현장임에도 이를 찾는 한국인은 거의 없는 반면 일본인의 경우 본토에서의 수학 여행 및 오키나와 현지 학생들의 단체 견학 등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형편으로 우리나라 각 여행사 페키지 스케줄에도 아예 없는 실정으로서 안타까운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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