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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나홀로 배낭 여행_국외

라오스

by 세인트1 2019. 5. 9.

뉴질랜드 여행 계획을 세우다가 갑자기 라오스에 필이 꽂혓네요.

이걸 우째야하나,,

뉴질랜드를 다음으로 미룰까 싶습니다.

뉴질랜드를 먼저 다녀와서 라오스를 그후에 가게된다면 

장마철과 겹치게 될테고,

그렇게되면 또,,

하이고,,, 이제 우기가 시작되고 질퍽한 거리를 누비는건 상관없으나 모기 밥이 되는게 무섭습니다.

라오스를 가려면 이번달안에 다녀오는게 좋을듯 한데,,,


라오스,,

위키백과에서 퍼왔습니다.

아무래도 라오스를 먼저 다녀와야 할것 같습니다.




라오스인민민주주의공화국) 또는 라오스(라오어: ປະຊາຊົນລາວ 무앙라오)는 동남아시아의 국가이다. 북서쪽으로는 미얀마와 중화인민공화국, 동쪽으로는 베트남, 남쪽으로는 캄보디아, 서쪽으로는 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국가로서 동남아시아의 유일한 내륙국이다. 인구는 2013년 기준으로 약 68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주요 도시로는 비엔티안, 루앙프라방, 방비엥, 팍세, 카이손 폼비한, 타케크 등이 있다.


라오스의 역사는 14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존재하고 그 이후 세 개의 왕국으로 나뉜 란쌍 왕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3년, 비엔티안 왕국, 루앙프라방 왕국, 참파싹 왕국이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면서 연합되었다. 1945년 3월 일본군의 점령 이후 잠시 독립을 했으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다시 프랑스의 통치를 받다가, 1946년 프랑스가 루앙프라방 왕의 통치하에 통일된 라오스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1949년 헌법이 공포되고 프랑스 연방 안에서 제한된 자치국가로 존재하다가 1950년 초부터 제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통해 실질적인 독립을 추진하였다. 좌파인 파테트라오의 군대가 북베트남과 연합해 라오스 정부군과 내전을 벌였고, 1975년 정권을 잡자 공산주의 국가인 라오 인민민주공화국을 공식적으로 설립하였다.


라오스는 일당제 사회주의 국가 또는 공산주의 국가이다. 수도는 비엔티안이다. 다른 큰 도시로는 루앙프라방, 카이손폼비한(사반나케트), 참빠삭 등이 있다. 공용어는 라오어이다. 라오스는 아시아 태평양 무역협정,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 동아시아 정상회의, 프랑코포니의 회원국이다. 2013년 2월 WTO에 가입했다.


라오스의 역사는 13세기에 중국 남부에서 살던 민족의 하나인 라오족이 지금의 라오스 영토로 이주해 온 것에서 시작한다. 이들은 메콩 강 유역에서 살았으며, 특히 비엔티안, 루앙프라방, 참빠삭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1353년에 파움 왕의 주도로 메콩 강 유역에 란쌍 왕국이 등장하였다. 란쌍 왕국의 지도자였던 파움 왕은 크메르 왕국이 약해지자 독립을 선언하였고, 불교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17세기 중반 술리나봉사 왕 때 크게 번영했지만 후계자를 남기지 못했다. 18세기초에 급격히 몰락하여 란쌍 왕국은 3개로 분열되고 친 태국 세력과 친 베트남 세력의 대립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졌다. 이때 비엔티안 왕국의 차오아누 왕은 영국이 태국을 공격한다는 소문을 듣고 태국 정벌에 나셨다. 하지만 1828년에 태국이 비엔티안 왕국을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심지어 국왕도 태국에 끌려가 감옥에서 살았다. 비엔티안 왕국의 왕 차오아누는 1829년 감옥에서 죽었다. 결국 분열된 라오스는 태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1860년대부터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침략이 시작되어 프랑스는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당시에 라오스 영토의 대부분이 태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프랑스는 무력을 사용하여 태국 정부로부터 메콩강 동쪽의 영토 지배권을 인정받았는데 이 영토가 현재의 라오스가 된다. 프랑스는 라오스의 3개 지방을 합쳐서 루앙프라방 왕국을 만들어 보호령으로 선포했다. 그 후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자 프랑스는 미얀마로 가는 길을 개방하였다.



러나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라오스는 급격히 혼란해졌다. 라오스의 독립파는 라오읻싸라, 즉 공산정당을 만들어 라오스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라오읻싸라는 베트남 공산정권인 베트남민주공화국과 긴밀하게 유대했다. 프랑스와 라오스 독립파의 전쟁은 갈수록 심해졌다. 결국 1949년 7월 19일 프랑스는 라오스를 독립시켰지만 국방, 외교, 재정권을 프랑스가 가졌다는 점에서 형식적인 독립이었다. 하지만 곧 우익과 좌익의 대립이 시작되었다. 우익의 지도자는 라오스 왕국의 총리가 된 수바나 푸마였고 좌익의 지도자는 수파누봉이었다. 1950년 라오스의 공산세력이 뭉쳐서 파테트 라오가 탄생했다. 1953년 10월 22일, 프랑스 라오스 조약에 의해 완전 독립을 달성했다. 독립 후 내전은 계속 심해졌고 결국 1954년에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라오스의 왕실 유지, 파테트 라오가 참여하는 정부 수립을 골자로 하여 평화 조약이 맺어졌지만 중립은 실패하였고 다시 내전이 시작되었다.


이후 라오스에서 우파, 중립파, 좌파(파테트 라오)가 갈라져 라오스 내전이 장기간 지속되었다. 1973년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수하였고, 1974년 세 파 연합에 의한 라오스 민족 연합 정부가 성립되었지만, 1975년 남베트남의 사이공이 함락되고 라오스 국왕과 수바나 푸마가 물러나면서, 12월 연합 정부가 왕정의 폐지를 선언하면서, 라오스 인민민주공화국을 수립했다. 이것으로 30년에 걸친 라오스 내전은 완전히 종식되었고 라오스는 공산주의 국가가 된다.


비밀 전쟁

이웃 나라 베트남에서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 라오스도 전쟁의 영향을 받았다. 북베트남군은 전쟁 물자를 라오스를 통과하는 이른바 '호찌민 통로'를 통해 전선에 수송하였다. 미군은 라오스의 일부 소수민족을 용병으로 고용하여 내전을 부추기면서[1] 호찌민 통로를 차단하기 위해 비밀리에 라오스 전 국토를 폭격하였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58만 회의 폭격이 이뤄졌고, 2백만t 이상의 폭탄이 투하되어 전 국토가 황폐해졌다. 미국은 베트남전 종전시까지 폭격과 라오스 내전 개입을 부인해서 '비밀전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2] 현재까지도 폭격으로 인한 불발탄에 끊임없이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3]



이 나라는 인도차이나 반도 내륙부를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인도차이나 반도 국가들 중 유일하게 바다가 면한 부분이 없다. 지형은 중국에서 남하하는 안남산맥이 국토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므로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평야는 메콩강 및 그 지류에 연해서 약간 펼쳐져 있을 뿐이다. 기후는 대다수 지역이 열대 몬순 기후이나 내륙 지방이므로 하계와 동계의 기온차가 크다. 사반나케트 등 남부 지역은 열대 몬순 기후이며(평균 25도) 북부의 루앙프라방 지역은 온대 동계 건조 기후이다. 그리고 중국과 인접한 산악 도시 무옹싱 지역은 겨울에도 이따금 서리도 내린다(1월 평균기온 10도). 5월부터 10월까지가 남서몬순이 부는 우기로, 약 2,000mm의 강우가 있다. 11월부터 4월까지는 북동몬순이 부는 건조기이다.[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