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퇴설계는 고사하고 반퇴자산이 얼마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김진영 신한은행 미래설계센터장은 최근 상담했던 한 퇴직자의 사례를 소개했다. 갓 퇴직한 이 전직 대기업 부장은 자신만만해 보였다. "6억원짜리 집과 총수령액 2억원 규모의 국민연금, 퇴직금 1억원, 자녀 유학비 용도로 모아둔 1억원 등 퇴직 후 활용 가능한 자산이 10억원 정도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 정도면 30년이라도 버틸 수 있을 거란 얘기였다.
그러나 김 센터장이 보기엔 부족한 액수였다. 우선 자신이 가진 재산과 퇴직 후 노후 설계에 쓸 수 있는 가용재산을 제대로 구분 못하는 우를 범했다. 김 센터장이 보기에 100% 확실한 반퇴자산은 총 2억원 상당인 국민연금과 1억원의 퇴직금뿐이다. 자녀 유학비는 자녀가 쓸 돈이라 제외해야 한다. 집은 유동적이다. 집을 줄이거나 주택연금의 담보로 활용한다면 전액 또는 일부가 반퇴자산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계속 거주하다가 자녀에게 물려줄 작정이라면 한 푼도 반퇴자산에 포함시킬 수 없다. 안타깝게도 반퇴세대 대부분이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태라는 게 김 센터장의 진단이다. 반퇴설계 자체를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고, 인식도 단순 재무설계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얘기다.
퇴직을 코앞에 둔 50대 직장인이 보고 배운 재테크는 선배 세대의 방식이었다. 재산을 불리는 데만 초점을 맞춘 '자산 축적형'이었다. 아끼고 절약해 돈을 모아 은행 예·적금에 넣어 굴린 뒤 이걸 기반으로 부동산을 늘려나가는 게 전형적인 수순이었다. 부동산 확장 경로도 '월세→전세→자택'과 '도시 외곽→시내→강남 등 핵심 지역'으로 정형화되다시피 했다. 이런 루트를 착실하게 밟으면 퇴직 때 아파트 한 채와 예금 잔액, 적지 않은 액수의 퇴직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이런 공식이 통했다. 부동산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뛰었고 예금 이자는 연 10%를 넘나들었다. 외환위기 때라 특별한 경우긴 해도 1998년 1월 평균 예금이자는 연 17.85%였다. 외환위기 이전인 96년에도 은행 예금에 넣어두면 연 9~10%의 이자는 받을 수 있었다. 특별한 재테크 수단을 고민하지 않아도 은행이나 부동산 시장이 알아서 자산을 굴린 뒤 더 많은 돈을 돌려줬다. 평균 수명도 지금보다 낮았기 때문에 퇴직 후 여생을 보내는 데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부동산 불패 신화는 깨진 지 오래다. 지난해 11월 현재 은행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연 2.1%까지 주저앉았다. 10억원의 자산이 있어도 이자는 월 175만원에 불과하다. 세후로 계산하면 월 148만여원으로 줄어든다. 퇴직자 평균 월 생활비 238만원에 턱없이 못 미친다. 평균 수명의 증가로 퇴직 후 소득 없이 버텨야 하는 시기는 30년 안팎으로 길어졌다. 꽤 많은 자산을 모았다고 해도 과거처럼 은행 예금에만 의존하면 곳간이 비는 건 시간문제다. 결국 어느 정도 위험 부담을 안고 보다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투자상품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
김 센터장은 "기성 세대의 재테크 특징 중 대표적인 것이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상품은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라며 "이런 생각을 버리는 게 반퇴시대 재테크에 적응하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조태석 KB국민은행 WM사업부 상무는 "반퇴시기를 포함한 노후생활을 위해서는 다양한 연금상품 등에 가입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금융사 상담을 통해 자신의 투자 성향을 확인한 뒤 성향에 맞는 국내외 투자상품에 다양하게 분산 투자를 한다면 위험도도 상당히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자산 투자 못지않게 중요해진 것이 한정된 자산을 어떻게 잘 배분해 나눠 쓰느냐의 문제다. 다시 말해 퇴직 후 30년 동안 매달 일정한 돈이 월급처럼 꾸준히 계좌에 들어올 수 있도록 사전에 배치해둬야 한다는 얘기다. 재테크뿐 아니라 '분(分)테크'와 '비(費)테크' 역시 중요해졌다는 얘기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평안한 노후를 위한 자산관리 5원칙'에 '적립에서 인출까지 한꺼번에 고려한 통합적 관점에서 자산을 운용하라'를 포함시킨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은 "앞으로는 축적 자산의 규모보다 퇴직 후 30년 동안 어떻게 고정적으로 현금이 들어오도록 만들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며 "자산을 처음 적립할 때부터 먼 훗날 어떻게 인출해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까지 함께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지식과 상식. > 은퇴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퇴해도 못 쉬는 '반퇴시대' 왔다 (0) | 2015.01.16 |
---|---|
국민·개인·퇴직연금은 기본 .. 매달 돈 나올 5곳 만들어라 (0) | 2015.01.16 |
FERS 계산법 (0) | 2014.11.29 |
CSRS 와 FERS 차이점 (0) | 2014.11.29 |
'노후계획' 은퇴 10년 전엔 시작하라 (0) | 2014.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