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살고 지구 사는 ‘생태 살림집’ 짓다
등록 : 2010.05.31 19:59툴바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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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살고 지구 사는 ‘생태 살림집’ 짓다
[건강한 세상] ‘적정기술’ 전문가 김성원씨
생태적 삶 꿈꾸며 장흥으로 귀농…자연 공존하는 ‘흙부대 집’ 완성
건축비 줄고 에너지 효율도 높아…핀잔주던 이웃 “겁나게 시원하네”
인간은 지구상에서 유지비가 가장 많이 드는 동물이다. 아니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해치는 유일한 존재다. 에너지 과소비로 지구 자원을 고갈시켰고, 그에 따른 지구 온난화는 생태계를 교란·파괴하고 있다.
전남 장흥에 사는 김성원·김정옥씨 부부는 ‘인간의 유지비’를 줄이는 데 관심이 많은 농부다. 2007년 3월 귀농한 이들 부부는 귀농인, 생명운동 단체 회원, 대안학교 학부모 등 대안에너지에 관심이 많은 이들 사이에 이름난 전문가이자 기술자다.
부부의 눈에는 지구에 와서 살다 떠나는 존재 가운데 인간만이 많은 것을 남기는 것으로 보였다. 주로 쓰레기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종도 그 자신이 깃들어 사는 지구를 위협하지는 않는다. 그저 조용히 왔다 자연스럽게 떠날 뿐이다. 부부는 자신들의 삶도 그러기를 바랐다. 도시의 삶을 그만두고 시골로 온 이유다. 부인 김씨는 2년만 더 버텼으면 연금을 탈 수 있는 장기근속 교사였지만 미련없이 도시를 떠났다. 남편 김씨도 그랬다.
이들의 대안에너지에 대한 관심은 남편에게서 비롯됐다. 생태적 삶을 꿈꾸던 그는 사이버 공간에서 ‘적정기술’을 만나게 됐다. 그것은 대안기술로도 불리는, 에너지 사용의 최소화로 자연과의 공존을 가능케 하는 ‘마법’이었다. 그는 인터넷을 뒤져 자연에 가장 부담을 덜 주는 건축, 조명,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의 ‘적정기술’을 알게 됐다. 놀라웠다. 난방, 조리, 농사 등에 필요한 기구를 만드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았다. 만들기도 쉬웠다. 대충 적당히 만들면 됐다. 그래서 김씨는 이를 ‘적당기술’이라고 부른다. 김씨는 부인 김정옥씨와 상의해 살집을 ‘적당히’ 지어보기로 했다.
“짚단을 사용하는 스트로베일하우스를 지으려고 했는데 봄에 짚을 구하기가 어려웠어요. 언젠가 인터넷에서 봤던 흙부대 건축이 생각나더라고요.” 국내 최초의 흙부대 건축은 그렇게 시작됐다. 막돌을 모아 기초를 다지고 쌀자루에 흙을 담아 벽을 쌓기 시작했다. 비탈진 터를 깎으니 흙은 지천으로 나왔다. 흙을 쌀자루에 담는 일은 부인 김씨를 중심으로 동네 아짐씨(아주머니의 전라도 사투리)의 도움을 받았고, 흙부대를 쌓는 일은 남편 김씨와 아재(아저씨의 사투리)들이 맡았다. “시골 분들은 이웃의 일을 허투루 하시는 법이 없어요. 얼마나 꼼꼼하게 열심히 하시는지 몰라요.”
일은 도와줬지만 동네 분들은 모두 한마디씩 했다. ‘이렇게 지으면 무너진다’는 걱정에서 ‘전쟁 났느냐 참호를 짓게’라는 비아냥 섞인 핀잔까지. 무너진다는 ‘협박’에 하는 수 없이 철골 빔으로 뼈대를 세웠다. 흙부대 건축은 뼈대 없이도 튼튼하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김씨 부부의 시도를 지원하는 먼 이웃들도 있었다. 귀농인 사진전을 준비하는 광주 지역 대학생들이 취재차 왔다 일손을 도왔고, 이 지역 문화단체 회원들도 힘을 보탰다. 6개월 만에 22평에 다락을 갖춘 멋들어진 집이 탄생했다. 바람이 센 동네라 비가 들이쳐서 집 앞쪽에는 목재로 멋진 테라스도 꾸몄다. 부인 김씨의 제자들이 와서 칠을 도왔다. 어려움도 많았다. 기초 다지기부터 벽체를 쌓고 지붕을 얹을 때까지 걸린 시간은 10일. 하지만, 그 뒤가 더 문제였다. 신출내기 목수 부부가 집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벽 미장, 배선, 배관, 인테리어 등.
“알면 시작하지 않았을 겁니다. 집 한 채 지으면 10년을 늙는다는 말을 절감했어요.”
‘적정기술’ 전문가 김성원씨
하지만 흙부대 건축은 매력적이었다. 적은 비용으로 빨리 짓는 것은 모든 건축주의 꿈. 그 꿈에 가장 가깝고 더구나 생태적인 건축이었다. 기와집이 대부분인 마을에서 도드라질 정도로 전원주택풍의 멋들어진 집을 짓는 데 든 건축비는 7천만원. 3.3㎡(1평)당 건축비가 인건비 포함해 150만원이 채 들지 않았다. 테라스에 욕심을 내지 않았으면 100만원 안쪽으로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인테리어는 이사 오기 전 일산에서 주워 모은 침대, 장롱, 찬장 등 폐품을 활용해 다시 만들었다. 거실에 놓인 고풍스런 진열장에서 찻상까지 버려진 가구는 명품으로 거듭났다. 부인 김씨는 “일산에 살 때 밤에 재활용장 산책하는 게 우리 부부의 취미생활이었다”고 했다.
‘적당히’ 지은 집은 대성공이었다. 여름에는 서늘할 정도로 시원했고 겨울에는 아파트보다 훨씬 따뜻했다. ‘살다 살다 내 평생 이런 집은 처음 본다’는 핀잔은 여름이면 ‘겁나게 시원한 집’이라는 칭찬으로 바뀌었다. 그는 흙부대 건축을 자신의 카페 흙부대생활기술네트워크(cafe.naver.com/earthbaghouse.cafe)에 공개했다. 소문을 듣고 노하우를 나누자는 이들이 생겼다. 동네 집 3채를 수리했고, 여성 귀농자의 집을 지었으며, 어르신을 위한 찜질방도 지었다. 지금까지 그의 손이 간 흙부대 건축물만 10곳이 넘는다. 인터넷 등 직간접적으로 그의 도움을 받아 지어진 흙부대 건축물은 80여 개에 이른다. 그는 지식을 나누기 위해 <이웃과 함께 짓는 흙부대집>이라는 책도 썼다.
“우리의 경험과 시행착오가 다른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너무 기쁩니다. 흙부대 건축처럼 비용이 적게 들고 에너지 효율이 높으며 이웃들과의 품앗이로 초보자들도 누구나 지을 수 있는 생태건축이 널리 보급되길 바랍니다.”
휴대용 가스버너를 대체할 수 있는 나무가스화덕은 깡통 두 개로 간단히 만들 수 있지만 잔솔가지나 쓰다 버린 나무젓가락들로 요리할 수 있을 정도로 열효율이 높다(왼쪽). 주방이나 야외에서 함께 쓸 수 있는 로켓스토브는 공학적으로 설계된 아궁이가 있어서 불이 잘 붙을 뿐 아니라 주위에 단열재를 채워 넣어 열효율이 높아 옛날 화덕에 비해 나무 사용량을 70~80%가량 줄일 수 있다(오른쪽).
김성원씨가 만든 ‘적당기술 발명품’
기름 한방울 안 때도 ‘뜨끈뜨끈’
집을 짓고 난 뒤 김성원씨는 농촌의 에너지 문제에 눈길이 갔다. “농번기의 농촌은 공장”이었다. 트랙터, 경운기, 곡물건조기 등 값비싼 석유에너지에 바탕한 기계들이 논과 들을 채웠다. 지속가능성이 없었다.
태양열 온수기, 태양광 발전, 풍력 발전기 등 신재생에너지는 개인이 도입하기에 너무 비쌌다. 제3세계의 가난한 주민들이 돈 없이도 쓸 수 있는 ‘적당기술’이 답이었다. 2005년 직장을 그만두고 1년 가까이 대안에너지 연구를 했던 것이 크게 도움이 됐다. 인터넷 기업에 근무했던 경력은 미국, 캐나다, 콜롬비아, 독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등 세계 각지의 적정기술 정보를 찾아오는 데 큰 힘이 됐다. 실내와 바닥 난방이 동시에 가능한 로켓매스히터, 시멘트와 철망을 이용해 물탱크를 만드는 페로시멘트, 열효율 90%대의 벽난로, 소수력 발전, 자전거를 활용한 농기구, 태양열 보일러, 폐드럼통으로 만드는 제빵 오븐기 등. 김씨가 운영하는 카페에는 적정기술에 대한 자료들이 수백건 쌓여 있다. 자료를 찾아 카페에 올렸고 직접 만들어 봤다. 이를 위해 김씨는 하루에 적게는 50여곳, 많게는 수백곳의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닌다. 그가 찾은 기술은 자신을 포함한 회원들에 의해 실현되고 개선된다. 김씨와 회원들은 김씨의 자료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제품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가마솥 거는 화덕, 야외용 가스레인지를 대체할 수 있는 로켓스토브, 황토 오븐 등은 70% 이상 에너지 사용을 줄여준다. 처음 동네 사람들은 김씨 부부의 별난 ‘발명품’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지금은 가마솥 거는 화덕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게 됐다.
이 때문에 귀농한 농부지만 김씨 부부는 농사보다 강연이나 기술개발과 보급에 더 바쁘다. 한 해 농업소득은 몇백만원에 불과하지만 부부는 그런 노하우를 주위에 나눠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외국에는 적정기술을 연구하는 학자와 전문가들이 많아요. 우리나라에도 그런 분들이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