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권고사직 후 분노와 실의로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죠. 그런 날 위해 아내가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그동안 미뤄오던 귀농을 결정한 겁니다. 그렇게 나와 아내가 한달 차이로 직장을 그만 두고 다시 한 달이 지난 2007년 3월1일 전남 장흥으로 이삿짐을 싣고 떠났습니다. 남쪽 바다 가까운 낯선 농촌 마을이 우리 부부가 뿌리내릴 터가 된 겁니다. 우린 그곳에 사람들이 듣도 보도 못한 ‘흙부대집’을 짓고 산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흙부대로 지은 집 ① 2 3 4
이렇게 대책 없고 갑작스런 귀농이라니. 준비란 게 고작 묵정밭 400평을 산 것 뿐. 그리고 고작 몇 개월만 짐을 풀고 살도록 허락받은 빈 농가가 전부. 그것 외에는 모든 게 여의치 않았습니다. 결국 사둔 묵정밭에 집을 짓기로 결정했답니다. 우리 부부는 평소 볏짚흙버무리를 척척 쌓아 짓는 코브하우스(cob house)나 볏짚단으로 짓는 스트로베일하우스(strawbale house)에 관심을 두고 있었죠. 하지만 관심과 실행은 다른 법. 그나마 쉬워 보이던 건축 방법들도 막상 집을 지으려니 자신이 없어집디다. 돈도 넉넉지 않았고 사실 집짓는 데 필요한 기술도 뭣 하나 배워둔 게 없었죠. 기껏 몇 권 흙집 짓기 책과 인터넷을 뒤져 모은 생태건축 자료들을 보고 집을 지으려하다니. 평생 책상머리 일만 해온 사람 어리석은 게 꼭 이렇답니다.
궁리만 복잡한 중에 그동안 제켜두었던 자료 파일을 뒤지다 칼어스센터(Cal Earth Center)에서 나온 간략한 4쪽짜리 흙부대건축 자료를 찾아냈습니다. 부대자루에 흙을 담아 쌓기만 하면 집을 지을 수 있다니! 나 같은 초보자도 경제적으로 지을 수 있는 생태건축 아닌가! 단지 그 4쪽짜리 자료만 보고 우리 부부는 흙부대로 집을 짓기로 결정한 겁니다. 일단 결정을 내린 후 해외 생태건축 사이트들과 블로그들을 뒤져가며 흙부대 건축 관련 자료와 사례들을 모았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다른 방식의 흙집 시공 방법을 참조키로 했습니다. 드디어 우리 부부는 2007년 4월 말부터 터를 닦고 부대자루에 흙을 담기 시작했죠. 지금 뒤돌아보면 역시 머리로만 살아온 사람의 무모함인거죠. 하지만 그 무모함 때문에 우리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흙부대집을 짓고 살게 된 겁니다.
달에 기지를 건설하기 위한 건축방법으로 개발해
흙부대 건축은 1984년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달에 기지를 짓는 방법을 찾다가 개발한 건축방법이랍니다. 우주선만 쏘아 올리기도 쉽지 않은 데 달에 시멘트, 모래, 철근처럼 무거운 건축자재나 건축 장비를 우주선에 싣고 갈 수 없는 노릇. 이때 이란 건축가 네이더 카흐릴리(Nader Khalili)가 달에 있는 흙과 암석을 부대자루에 담아 쌓는 건축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이때부터 그 사람은 칼어스센터를 세우고 여러 채의 실험적인 흙부대(Earthbag) 건축물을 세웠습니다.
줄이어 독일 건축가 프라이 오토(Frei Otto)와 세계적인 흙건축 전문가 거노트 밍케(Gernot Minke), 오언 가이거(Owen Geiger) 박사가 흙자루와 흙 튜브를 이용해서 본격적으로 주거용 집들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흙부대집들이 들어서고 있고 기술도 날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국내 경우엔 우리 부부가 지은 장흥 흙부대집을 포함해서 이미 완공되었거나 현재 건축 중인 흙부대집이 30 곳이나 된답니다. 흙부대집은 쌀자루나, 마대자루, 순대처럼 긴 쌀자루 튜브, 스타킹처럼 긴 망사튜브, 양파망, 면포 같은 자루에 흙이나 자갈, 마사, 모래 등을 담아 다지면서 벽체를 쌓고 흙이나 석회를 발라 집을 짓는 방식입니다. 흙부대를 쌓으면서 매 단마다 철조망을 깔게 되는 데 철조망이 몰탈 역할도 하고, 벽체에 강력한 인장력과 결합력을 제공하게 되는 겁니다. 철조망을 사용하기 싫다면 양파 망이나 망사튜브에 찰진 흙을 담아 쌓으면 됩니다. 진흙이 서로 밀려나와 접착하게 되니까 철조망이 필요 없게 되죠. 흙부대로 벽체를 쌓는 방식을 알면 흙부대 건축 전부를 알게 되는 셈.
벽체를 쌓는데 사실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죠. 정말 간단합니다. 흙부대건축에는 나무 기둥이나 철골조가 필요 없답니다.무골조 방식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무리 간단한 건축이라지만 말처럼 집짓기가 쉬울 리 없지 않겠어요. 어찌 집이 벽체를 쌓는 일이 전부겠습니까. 집을 지으면서 힘든 일도 많았지만 돌아보면 비교적 흙부대건축이 간단하고 단순한 건축 방법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국내에 지어진 흙부대집 대부분이 건축업자에게 맡기지 않고 건축 초보자인 집주인들이 직접 나선 ‘자기주도적 건축’입니다. 이들 대부분이 특별한 건축 교육을 받지 않았고, 다만 인터넷 동호회 카페에 올려진 자료를 보고 집짓기를 시도하고 있답니다. 전 세계 농촌 어디나 토착적인 지역 살림집들은 거창한 건축이론이나 고급기술이 필요 없는 단순한 집짓기 방식으로 지어졌습니다. 생활기술인 집짓기가 단순하고 쉬워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같습니다. 본채를 완성하고 손님을 위한 뒷방 채와 창고를 본채에 매달아 지었습니다. 집짓기에 재미가 난거죠. 요즘은 이집 저집 이웃들 집수리를 돕거나 몇 군데 품앗이로 서툰 일손을 더해봅니다. 작년 늦가을 마을 낡은 한옥 집을 수리를 도왔는데 상량문을 보니 한국전쟁 직후 지어진 집입니다.
그때만 해도 마을 목수와 동네사람들이 마을 뒷산의 흙과 나무, 돌을 이용해서 함께 집을 지었답니다. 이장님께 옛날 집짓던 이야기도 들어보고 이집 저집 집짓기를 도우면서 뒤늦게야 집은 혼자서 짓는 게 아니란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네요. 돌이켜보면 우리 집도 우리 부부 둘만의 힘으로 지은 게 아닙니다. 부족한 품삯만으로도 기꺼이 힘든 건축 일을 도우신 마을 아재와 마을 형님들. 50여 년 만에 마을에 새로 들어서는 새집을 축하한다며 노구를 이끌고 집짓기를 거든 마을 어르신들의 하루 품앗이가 한몫을 했죠. 예전엔 40호나 되던 마을이 20여 호로 줄기까지 줄곧 빈집들이 허물어져갔답니다. 새 사람이 들어오고 새집이 지어진다는 데 왜 기쁘지 않을까요.
오랜 경험을 조심스레 들려주시던 구십세 가깝던 마지막 마을 목수 오산 어르신과 흙미장을 도우며 얼굴에 흙을 묻히고 장난치시던 칠순 접정댁 아짐은 한해 전 돌아가셨습니다. 광주대학 사진동아리 학생들과 특별히 날을 잡아 한여름 힘겨운 집짓기를 다독거려준 장흥 문화단체 회원들도 한몫을 했습니다. 집 짓는데 쓰라며 돌과 황토 흙을 가져다준 농민회분들에겐 지금까지 감사 인사 한번 제대로 못했습니다. 장흥까지 찾아와 집짓기를 돕던 캐나다 퀘벡 출신의 아나키스트이자 나의 의형제인 니꼴라 룻소도 그중 한 사람이죠. 직장에서 잘리고 무작정 도시를 떠나 연고 하나 없던 장흥으로 떠나온 나의 집짓기를 그 많은 사람들이 도운 겁니다. 원래 세상은 함께 살아가는 곳이고 집은 함께 더불어 짓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겁니다.
‘경험과 지식은 나눠야 지혜가 된다’고 했습니다.경제적이고 생태적인 대안건축 가운데 하나인 흙부대 건축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흙부대건축네트워크(http://cafe.naver.com/earthbaghouse) 카페를 만들고 흙부대 건축 경험과 정리해두었던 자료들을 공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 카페에 올린 자료들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집구경을 왔고 저희처럼 너도 나도 흙부대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2009년까지 전국에 30여 채가 넘는 또 다른 흙부대집이 세워졌습니다. 인터넷 카페엔 흙부대 건축에 대한 모든 자료를 공개되어 있습니다. 가입 제한도 없습니다. 전국 흙부대건축 사례와 현장 모습이 사진과 함께 공개되어 있죠. 이렇게 회원들과 함께 서로의 건축 경험과 지식을 공개하고 나누는 네트워크를 확대해가고 있습니다. 2009년 초부터 귀농운동본부와 함께 《이웃과 함께 짓는 흙부대집》이란 책을 출간하고 귀농자들을 위한 건축교육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어느새 이렇게 집을 지은 후 도시를 떠날 때의 상처를 씻어내고 분에 넘치게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게 되었죠.
스스로 그리고 더불어 짓는 모든 생태건축은 혁명이다
흙부대집 자랑을 해볼까요. 흙과 나무와 돌로 지어진 집은 자연 속에서 숨을 쉽니다. 적절하게 습도를 조절한답니다. 아직 저희 집 목욕탕 천장에 물방울 맺힌 걸 본적이 없습니다. 미장이 다 마르고 나니 한 겨울 창문에 결로도 생기지 않는답니다. 가끔 서울이나 일산으로 볼일이 있어 아파트에 묵게 되면 갑갑해서 못 견딜 정도입니다. 흙집은 숨을 쉬지만 시멘트집은 숨을 쉬지 않기 때문에 확연하게 그걸 느끼게 되는 거죠. 외벽이 40cm이상인 두꺼운 흙벽의 단열과 축열 효과 때문에 추울 때 한번 불을 때면 밤새 따뜻합니다. 저희 집은 한여름인 요즘 에어컨 없이도 서늘할 정도로 시원합니다. 흙을 손으로 바른 손미장의 부드러운 곡선과 자연스러움과 더불어 집밖의 지나친 소음을 막아주니 그 조용함이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흙부대집의 진정한 가치는 다른 데 있답니다.
흙부대집의 진정한 가치는 초보자도 스스로 지을 수 있는 집이란 점입니다. 커다란 빌딩이 아니라면 제 식구 들어갈 살림집 건축은 누구나 익힐 수 있는 생활기술이어야 합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농촌 마을사람들처럼 마을 공동체가 함께 참여해서 익힐 수 있는 공동체 기술이 살림집 집짓기입니다. 스스로 지은 집은 개성이 묻어나고 추억이 깃듭니다. 전국에 지어진 흙부대집들을 돌아보니 다들 집들이 그 집 지은 주인을 닮았더군요. 모두들 직접 지은 집이니까 자부심도 느끼고 부족한 게 있어도 모든 것이 용서되는가 봅니다. 애쓴 노동과 마음과 손에 흙을 묻혀가며 지었기 때문에 누가 천금을 준다해도 못 팔 것 같다 합니다. 사실 팔릴 집들도 아니고 팔 수도 없겠지요. 그때부터 집은 부동산이 아닙니다. 드디어 삶이 깃드는 집이 되는 겁니다.
흙부대집의 또 다른 가치는 외부에서 사들여오는 값비싼 산업자재를 최대한 줄이면서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지역에서 나는 자연자재를 최대한 활용해서 그 고장에 사는 사람들의 기호와 풍토에 맞는 특유의 토속건축을 우리 시대에 맞게 재창조할 가능성을 엿보게 합니다. 로컬푸드와 같은 의미로 건축에서도 재지역화(re-localization)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집을 지역의 자연자재로 마을 공동체나 친구, 이웃들과 함께 짓게 되면 그제야 집이 돈만으로 짓는 것도 아님을 알게 된답니다. 그때부터 건축비에 대한 우리의 고질적인 부담감과 평당 건축비에 대한 복잡한 계산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부동산 투기와 토건주의가 판치는 우리 사회에서 ‘스스로 그리고 더불어 짓는 모든 생태건축은 혁명이 된다’고 믿게 되었나봅니다. 요즈음 마을로 들어오는 귀농자들이 늘어납니다. 그들과 함께 ‘집을 함께 짓고 살던 농촌 공동체’를 꿈꾸며 조금씩 힘을 합쳐 보렵니다.
글을 쓴 김성원 님은 2007년 3월 전남 장흥으로 귀농, 국내 최초로 흙부대집을 지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네이버 카페 ‘흙부대건축네트워크’를 운영하며 흙부대 건축 경험과 국내외 사례들을 모아《이웃과 함께 짓는 흙부대집》을 출간하고 귀농운동본부와 함께 귀농자들을 위한 생태건축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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