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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상식./은퇴 상식

유언신탁 서비스를 아시나요

by 세인트1 2014. 10. 6.




외국에선 유언장 쓰는 문화가 익숙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낯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사후(死後) 상속 분쟁에 대비해 유언장을 작성하는 사람은 100명 중 1명에 불과하다는 조사도 나와 있다. 이는 중국·호주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균 수치인 6%에도 크게 못 미친다.   

유언장도 없이 갑작스럽게 가장이 사망하면 유가족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피상속인이 유언장을 남겨두었는데도 유가족들끼리 볼썽사나운 상속 분쟁을 벌이는 일도 빈번하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는 선진국들은 이런 일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까. 

일본 고령자들은 이런 걱정을 ‘유언신탁’이란 금융 상품을 활용해 덜고 있다. 유언신탁이란, 유언 작성 조언에서부터 상속 발생 후의 재산 분할 등에 이르는 모든 절차를 대행해 주는 서비스다. 유언신탁에 가입한 일본 고령자들은 “금융회사가 옆에서 도우미처럼 모든 편의를 봐주기 때문에 가족들의 부담이 줄고 쉽게 원만한 해결도 이끌어 낸다”며 “약간의 비용은 감수해야 하지만 그리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상속인 어리거나 장애 있을 때 요긴

우리나라 금융회사들도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 은퇴를 맞이해 유언장 작성에서부터 유언 집행에 이르는 모든 절차를 대행해주는 유언신탁 서비스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거액을 가진 VIP 자산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최저가입액 등 문턱을 낮춘 곳들도 있다. 선진국 고령자들은 애용하지만, 아직 우리는 멀게만 느껴지는 유언신탁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유언신탁의 의미를 제대로 알려면 먼저 ‘신탁’을 이해해야 한다. 신탁은 금전이나 유가증권, 부동산 등의 재산을 제3자(수탁자)에게 맡겨 관리나 운용, 처분 등의 절차를 위탁하는 상품을 말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펀드’는 다른 말로 하면 ‘투자신탁’이다. 즉 제3자인 금융회사에 나의 자산을 믿고 맡기는 것이 바로 투자신탁(펀드)인 것이다. 

신탁은 국내에선 지난 1960년대에 처음 나왔지만 크게 대중화하지 못했다. 상품이나 수익률 광고가 금지돼 있다 보니 홍보가 덜 되었고, 그 결과 아직도 신탁을 낯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탁이 다루는 영역은 단순히 재산 증식을 위한 투자뿐만 아니라 재산 관리, 재산 보관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넓다. 상품 구성이나 내용도 정형화되어 있는 게 아니라 고객과의 별도 계약에 따라 전부 달라진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신탁은 고객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계약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말로 하면 1인 사모펀드라고 볼 수 있다”며 “특히 상속인이 어리거나 장애 등으로 재산을 안전하게 지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든든한 방어막이 되어 준다”고 설명했다.


은행·증권·보험 선점 경쟁 가열

유언신탁 서비스에 가장 먼저 뛰어든 곳은 노후 관련 상품을 많이 구비하고 있는 보험사들이다. 미래에셋생명은 지난해 유언장 작성과 관련한 모든 절차를 대행해 주는 ‘유언신탁’을 보험업계 최초로 선보였다. 미래에셋생명 관계자는 “유언장만 보관하다가 사망하면 신탁계약을 설정할 수도 있으며, 관리해야 할 재산이 많은 경우에는 처음부터 신탁 계약을 맺어 사망 시까지 운용하다가 사망 시 유언 내용에 따라 상속 재산을 분배하도록 계약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저 가입금액은 제한이 없다.

증권업계도 유언신탁 서비스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지난 2월 고객 유언장을 최대 40년간 보관해주는 유언신탁 상품을 선보였다. 변호사, 세무사들과 함께 유언장 작성을 하나부터 열까지 도와준다. 일정액의 수수료를 더 내면 고객이 사망한 후 유언 내용에 따라 재산 분할 등 유언 집행을 대행해준다. 상속 재산을 신탁 받아 일정 기간 운용한 뒤 지정자에게 배분해주기도 한다. 삼성증권은 유언장를 작성할 때 법무법인에 내야 하는 공증수수료도 10% 깎아준다. 유산신탁 금액은 최소 1억원이고, 유언장 보관 수수료는 가입 첫해 10만원이며 매년 5만원씩 내야 한다. 공증수수료나 유언 집행, 상속 재산 신탁운용 수수료 등은 별도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유언장을 장롱 속에 깊이 숨겨두는 바람에 유언장이 발견되지 않아서 형제간에 다툼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상속인이 미성년자 등 약자이거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경우에도 유용하다”고 말했다. 단 피상속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어느 금융회사에 유언장을 신탁해놓았는지를 미리 알려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외환은행도 올 초부터 우량고객을 대상으로 유언신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문변호사와 세무사가 유언 작성을 상담해주며 상속 재산을 둘러싼 가족간 분쟁을 줄여준다. 유언장처럼 법적 효력을 가지지 않았더라도 가족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나 재산 목록 등을 적은 문서, 즉 유훈(遺訓)이 있다면 은행 금고에 보관해 준다. 고객이 사망하면 미리 정해 놓은 사람에게 이를 발송해 상속 재산을 둘러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단 거래 실적과 기간, 금액 등을 감안해 각 PB 영업점이 VIP로 선정한 고객에 한해 서비스 받을 수 있다. 

산업은행은 은행권에서 최초로 유언신탁을 선보였다. 기본 계약을 맺으면 유언장 작성에 대한 상담을 제공하고 유언장을 보관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유언장 보관 수수료는 연 5만원이다.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모두 포함해 상속 재산이 5억원 이상인 고객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고객이 원하면 사후에 유언장 내용대로 은행이 유언을 집행하거나 신탁을 설정해 자산을 운영∙배분해주는 서비스까지 선택할 수 있다.


기사: 이경은 조선일보 경제부 기자 (div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