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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나홀로 배낭 여행_국외

0301-13, Death Valley #15_ Zabriskie View point

by 세인트1 2013. 3. 8.



Land of a Thousand Stories

The human stories in this vast land are as numerous as the variations of color found in the hills and valleys here. Whether it was the lure of mineral wealth or the resort industry that brought people here, every person who entered this valley experienced it in a different way. Exploring those differences is what makes a study of the ethnic history of Death Valley so exciting and challenging.

Native Americans
The Timbisha Shoshone Indians lived here for centuries before the first white man entered the valley. They hunted and followed seasonal migrations for harvesting of pinyon pine nuts and mesquite beans with their families. To them, the land provided everything they needed and many areas were, and are, considered to be sacred places.

Black Forty-niners
The party of emigrants coming into Death Valley in 1849 had an experience that would ultimately establish Death Valley’s reputation. While much is known about some of the members of this group, the histories of others remain hidden. There were 3 black men in the group of 49ers who traversed Death Valley during that fateful trip. They were Negro Joe, Little West and Smith. Negro Joe was possibly the slave of Dr. Fred Carr. Little West was a slave, unknown owner, probably from Mississippi and Smith, the third man, was from Missouri. Smith travelled with a group of German immigrants for a time and then followed the Jayhawkers. His ultimate fate was unknown but it was rumored that he was killed by Indians after leaving Panamint Valley. How did Smith happen to be travelling with the ‘49ers? What were the experiences of Negro Joe and Little West here? Their stories remain an intriguing mystery.

Chinese Workers
As silver and borax discoveries brought people into Death Valley in the late 1800’s, another ethnic group came into the Valley. Chinese workers built Panamint City in the 1870’s, but they didn’t stay in the area. Another group toiled in the successful mining operation at Harmony Borax Works. They made a road 160 miles long through the salt pinnacles and raked the borax off the valley floor from 1883 until 1888 when the last 20 mule teams rolled out of the valley. Then, they, too, disappeared, leaving only bits of broken bottles, pottery shards and remnants of porcelain in their place. What were their feelings about this place? Did they ever come back? Questions, with no known answers.

Basque History
The Basque history of Death Valley has produced several people of note. Dolph Nevares was employed by the Pacific Coast borax company as the Greenland ranch caretaker in 1900 and later, as a prospector for borax. He left the borax company and settled at Cow Creek where he grew fruits and vegetables. “ one day I looked around wondering where time had gone--50 years of it” Eventually Dolph left Death Valley and moved to San Bernardino. Domingo Etcharren was known as the Basque butcher from Ballarat. He was also the prospecting partner of Jack Keane. In December 1903 they found gold. Domingo took his profits and bought land in Darwin, becoming a leading citizen of that town. He and Pete Aguereberry, another Basque, were good friends. Pete had come into Death Valley in the summer of 1905 to prospect. While travelling with Shorty Harris, he found gold. In the aftermath of that strike the town of Harrisburg came into being. Long after Harrisburg had boomed out, Pete continued to work in his Eureka mine until death stopped the old prospector and miner in 1945.

Japanese American Internees
When a riot broke out at Manzanar War Relocation Camp in December 1942, a group of 65 Japanese and Japanese American internees were brought into Death Valley for their safety. They were housed in old CCC barracks at Cow Creek and for approximately three months they lived and voluntarily worked with a skeleton crew of National Park Service staff. By mid February jobs and sponsors had been found for them in other parts of the country and they left Death Valley.

In the overall time span of Death Valley their footsteps were as transient as the patterns of shifting sand. The quest to discover their tantalizing legacy is as challenging as the quest to strike it rich that brought so many of them to this area. This is the quest that you and I can embark on today as we explore this land of a thousand stories.

천 사례의 나라


이 광대 한 땅에 인간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언덕과 계곡에서 발견 된 색상의 변화만큼 많은 수 있습니다. 이 미네랄 풍부한의 유혹하거나 여기 사람들을 가져온 리조트 업계했는지,이 계곡을 입력 모든 사람은 다른 방법에 경험했다. 그 차이를 탐구하는 것은 흥분되고 도전 죽음의 계곡의 민족 역사의 연구를 만드는 것입니다.


아메리카 원주민

처음으로 백인이 계곡을 입력하기 전에 Timbisha 쇼 쇼운 인디언 세기 동안 여기 살았습니다. 그들은 사냥 그리고 그 가족들과 함께 pinyon의 소나무 견과류와 메스 키트 콩의 수확에 계절 마이그레이션을 따라 갔다. 그들에게,이 땅 그들이 필요한 많은 영역을했다 모든 제공하고, 신성한 장소로 간주됩니다.


블랙 마흔 niners

1849 년 죽음의 계곡으로 들어오고 emigrants의 당사자는 궁극적으로 죽음의 계곡 '의 명성을 확립 것이다 경험을했습니다. 많은이 그룹의 구성원 중 일부에 대해 알려진 반면, 다른 사람의 역사는 숨겨 남아있다. 그 운명적인 여행 중 죽음의 계곡을 통과 49ers의 그룹 3 흑인이 있었다. 그들은 흑인 조, 리틀 웨스트 스미스했다. 흑인 조 가능성이 박사 프레드 카의 노예이었다. 리틀 웨스트, 아마 미시시피와 스미스, 세 번째 남자가 노예 알 수없는 소유자였다 미주리에서했습니다. 스미스는 시간을위한 독일 이민자의 그룹과 여행 후 Jayhawkers을 따라 갔다. 그의 궁극적 인 운명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자신이 Panamint 밸리를 떠나지 후 원주민에 의해 사망​​했다고 소문이되었습니다. 어떻게 스미스는 '49ers와 함께 여행 할 된거 야? 여기에 흑인 조 및 리틀 서의 경험은 무엇입니까? 그들의 이야기는 흥미로운 미스테리로 남아있어.


중국어 근로자

은과 붕사 발견은 후반 1800 년대에 죽음의 계곡으로 사람들을 데려와 같은 다른 소수 민족 그룹은 계곡에왔다. 중국어 노동자는 1870 년대에 Panamint 도시를 구축하지만,이 지역에 남아 없습니다. 또 다른 그룹은 하모니 붕사의 작품에서 성공을 채굴 작업에 고역을 치루 었지. 그들은 소금​​ 첨탑을 통해 1백60마일 긴 도로를 만들어 지난 20 노새 팀이 계곡에서 흘러 나와 버렸다 1888까지 1883에서 계곡 바닥에 붕사를 깎을. 그런 다음, 그들은 역시, 깨진 병, 도자기 파편과 장소에서 자기의 흔적 만 비트를 남겨두고 사라졌다. 이 장소에 대한 자신의 감정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다시 돌아 왔나요? 알려진 답변 질문.


바스크어 역사

데스 밸리의 바스크어 역사주의의 여러 사람들을 제작했습니다. Dolph의 Nevares는 붕사의 아저씨로, 나중에 1900 년에 관리인과 그린 랜드 목장으로 태평양 연안 붕사 회사에 의해 고용되었다. 그는 붕사 회사를 떠나 사람이 과일과 채소를 자란 곳 소 크릭에 자리를 잡았다. "어느 날 난 시간이 과거가있는 곳 궁금 둘러 보았다 - 그 50 년"결국 Dolph는 죽음의 계곡을 떠나 산 Bernardino으로 이동합니다. 도밍고 Etcharren는 밸 러랫에서 바스크 정육점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또한 잭 킨의 탐사 파트너이었다. 1903년 12월에서 그들은 금을 발견했다. 도밍고는 그의 이익을 가져다 그 도시의 선두 시민되기, 다윈에 땅을 샀다. 그와 피트 Aguereberry, 다른 바스크는 좋은 친구 였어. 피트는 전망에 1905 년 여름에 죽음의 계곡에 들어했다. 귀염둥이 해리스와 함께 여행하는 동안, 그는 금을 발견했다. 그 파업의 여파에서 해리스 버그 마을의 존재로왔다. 죽음이 1945 년 이전의 광부와 광부를 중지 할 때까지 해리스 버그 아웃 급속히 한 긴 후, 피터는 그의 유레카 광산에서 일을 계속했습니다.


일본어 미국 Internees

폭동 12 월 1942 년 Manzanar 전쟁 이전 캠프에서 발생했을 때, 65 일본어, 일본 미국 internees의 그룹들은 안전을 위해 죽음의 계곡으로 가져되었습니다. 그들은 소 크릭에서 기존 CCC 막사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약 석 달 동안 사람들은 거주하고 있으며 자발적으로 '국립 공원 서비스 직원의 골격 승무원과 협력했다. 2 월 중순 작업 및 스폰서함으로써 국가의 다른 부분에 대해 발견하고는 죽음의 계곡 '을 떠난 있었다.


데스 밸리의 전체 기간에 그들의 발자취는 모래를 변화의 패턴처럼 과도했다. 자신의 욕망을 돋 구진 유산을 발견 할 수있는 퀘스트는이 지역에 너무 많은 가져온이 풍부한 공격 할 수있는 퀘스트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천 기사의이 땅을 탐험로 귀하와 오늘에 착수 할 수있는 퀘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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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시간을 가장 많이 소비된곳이다.
골든 캐년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느 노인네가 다가온다.

말이 노인이지 정정하다.
카메라만 달랑 들고 있는 모습이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것 같다.
우리는 같은 찍사의 반가움에 들떠 
여기 저기 서로 의견을 나누며 어디는 어떻고,,
어디가 좋고,,

노인의 말은 걸으면서,,
사진을 찍으면서도 끝임없이 이어진다.
그는 전체 미국 국립공원의 48곳을 돌았다고한다.
시작한지 몇년됐냐?
10년이 좀 넘은것 같다.
좋겠다,, 내 꿈이 바로 그렇게 늙는건데,,
직장 생활 25년 한후에 회사가 문닫는 바람에 어쩔수없이 은퇴해서 여행 다니고있다.
근데 왜 혼자냐? 와이프는?
와이프는 벌써 죽었어.
혼자 다니면 심심하지 않냐? 
사진찍으러 가서 친구 사귀고 그들과 바에서 맥주한잔 하면서 얘기하고,,, 난 내인생이 너무 좋다.

노인네는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나두 이러고 다니지만 너무 부러운 노인.
나도 저러고 늙고 싶은데 가능할까?
꼭 저렇게 늙고싶다.

한참을 얘기끝에
어디갈거냐라는 노인에 말에 동쪽으로 간다 했더니
꼭 들리라고 소개해준 곳이 아래 사진의 장소다.

골든 캐년에서 나오면서 겪은 에피소드 하나,,
차들이 별로 안다니고,,,
길은 뻥뚤려있고,,
속도 제한이 45,50,55마일 계속 이따위다,,
누가 그걸 지키냐구,,
경찰도 없구 
시간도 촉박한데,,

신나게 달린다.
75, ,, 85,, 
어쿠,,
이게 웬일이래?
정면에서 오던 차가 갑자기 ,
번쩍 번쩍,,,,,
아뿔사 경찰차다.

재수 드럽네,,
차를 옆으로 세우려하고,,
패트롤도 반대쪽 길가 옆으로 세우려하구,,
하다가,,,
경찰이 손짓을 천천히 가라고 손으로 살랑 살랑 신호하더니
엄지 손가락까지 치켜들어 보인다.

아하,,,
앞 창문 앞에 붙어있는 회사 표시 로고와
앞 거울 밑에 매달아 놓은 국립 공원 무사 통과 카드를 본것이다.
아,, 이런 재수,, 조타~~
근데,,
왜그리 미안한지,,
아니구나,,
이게 아니구나.
다른 신분도 아니구,,

에구,, 어쨌든 그다음부터는 철저하게 제한 속도를 지키고 다니는 모범 시민으로 변할수 밖에 없었다.


이곳은 단 한시도 눈을 돌리수가 없었다.
차를 운행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조금 움직이다가 세우고,,
또 조금,,
그런식으로 운행을 하니
하루 종일을 거의 이곳에서 살다 싶이 하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