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는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한반도 국가와의 연관성으로 인하여 한반도 국가와의 친밀성을 유지한 반면 오히려 일본 본토 국가들과는 단절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일본 본토와의 교류를 꺼려하면서 일본 본토로부터의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하여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오키나와의 역사성이다. 그 반감의 원인이 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아래와 같다.
일본의 임진왜란(1592년) 발발시 일본 본토에서의 전쟁지원 강제 요청을 받았으나 한반도 조선과의 선린 즉 형제 국가라는 이유로 오키나와가 이를 거부하자 이에 대한 대가로 전쟁 종료 후 본토로부터의 무자비한 상륙 공격 및 지배에 따라 많은 피해를 입은 사례
본토와의 교류조차도 꺼리는 상황에서 일본 본토의 왕정복고 및 역사 왜곡이 이루어진 메이지 유신(1868년) 직후인 1879년 병합되어 왕조국가(류큐왕국)에서 일본의 일개 현으로 강제 복속되었으며,
일본에 의한 제2차 세계대전인 태평양전쟁 당시 미국과의 전투에서 오키나와를 방어선으로 설정한 결과 미군의 집중적인 공격에 의하여 오키나와 본토인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전쟁에 휘말려 무자비한 공습에 의하여 많은 피해를 입는 한편 징집 및 자살 강요에 의하여 많은 인적 피해를 입는 한편,
전쟁 후 패전 결과로 오키나와가 미국의 직할 점령지로 있다가 1972년 일본에 반환되는 동안 미국의 군사기지로서 지배를 받은 것에 대하여 자기들이 일으키지 않은 전쟁에 강제로 타의에 의하여 휘말려 군사기지에서 발생하는 각종 피해(비행기 소음, 군사지기 토지 강제 수용, 미군 범죄 등)를 보고있다는 피해 의식이 매우 강하여 반감이 큰 한편,
최근에 해병대 기지를 오키나와 본섬 기지에서 바다를 매립하여 이전하는 방안을 반대하면서 야당 주지사 선출을 계기로 아예 이전이 아니라 철수를 주장하여 매립 공사를 중지시키자 본국에서 이를 다시 재개시키는 등 일본 본국과의 마찰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임.
오키나와의 이러한 본토에의 반감은 일본 본토 열도의 고대국가 성립시기인 AD3세기부터 AD6세기까지의 한반도 국가인 가야, 신라, 고구려, 백제 세력의 진입에 따른 고대 문화 및 국가 성립과 마찬가지로 AD13세기 ~ AD15세기 고려 및 조선 세력의 진입에 따른 국가 건립 및 문화 전파에 따른 기원에 따라 한반도와의 선린에 반하여 이루어진 일본 본토열도의 간섭 및 압박으로 인한 피해와 반감이 그 주된 원인이 된다는 것이 이글의 주요 골자이며 이에 대한 입증이 펼쳐질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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