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36.5°/10월 22일] 국립공원과 셧다운
- 이성원 국제부 차장대우 | 2013-10-21 20:34:16
미국 연방정부 폐쇄(셧다운)가 최근 극적으로 마감됐다.
10월 1일 셧다운이 시작된 날 미국의 국립공원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셧다운의 상징이라도 된 듯 문을 걸어 잠근 국립공원과 국립기념관 사진들이 연방정부 폐쇄 첫날의 분위기를 주도했다.
국립공원 직원들이 일시 직위해제 됐다는 소식을 들으며 3년 전 디날리 국립공원에서 만났던 한 직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잘 나가던 IT 기업을 다녔다던 그 청년은 어렸을 때부터 꿈꿔온 국립공원 레인저가 되고 싶어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숲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정치권의 세 싸움 때문에 천직이라 여긴 터전에서 쫓겨나야 하는 그는 얼마나 허망했을까.
셧다운으로 폐쇄된 건 국립공원뿐만이 아니었다.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 링컨기념관, 전쟁기념묘역,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까지도 문을 닫아 걸었다.
각기 다른 성격이지만 이들이 셧다운된 건 모두 국립공원청(NPS)의 관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설악산 지리산 같은 일반적인 국립공원과 다도해 한려해상 등 국립해양권, 경주의 국립역사공원 등 3가지 유형뿐이지만 미국의 국립공원청이 관리하는 공원의 유형은 스무 가지가 넘는다.
옐로스톤 요세미티 등의 국립공원은 기본이고, 아름다운 강변이나 호수까지 국립강, 국립호안 등으로 지정해 관리한다. 독립전쟁 남북전쟁 등의 역사를 기념하는 많은 곳들이 국립역사관 혹은 국립기념지로 지정돼 있고, 우리의 올레길과 둘레길 같은 트레일 또한 당당히 국립트레일로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다.
세계에서 제일 처음 국립공원제도를 만든 나라이기에 국립공원에 대한 미국인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들은 "국립공원이야말로 미국인이 생각해낸 아이디어 중 역사상 가장 훌륭한 것"이라고 치켜세운다.
옐로스톤이 세계 최초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건 1872년이다.
그곳의 용출온천과 폭포 등 기묘한 자연현상이 백인 사냥꾼의 입소문을 타고 번지자 1870년 몬태나주 주정부 차원의 탐사대가 꾸려져 탐험을 나서게 됐다.
옐로스톤의 자연에 매혹된 탐사대는 현장에서 토론을 했다고 한다.
"관광 명소가 될 게 분명하니 우리끼리 땅을 나누자"란 의견도 있었지만 "이처럼 신비로운 곳은 결코 특정 개인의 사유지가 되게 해선 안된다.
모든 사람들이 이용하고 즐길 수 있는 보존 지역을 영구적으로 지정하자"고 뜻을 모았다.
깃발만 먼저 꽂으면 자기 땅이 되던 시절, 투자가치 높은 곳을 사유화하지 않고 공공의 이용을 보장하는 국립공원이란 개념을 처음 고안해낸 것은 당시로선 혁명적인 일이다.
미국의 국립공원들에겐 인공의 절대 배제라는 원칙이 있다.
미국 국립공원에는 단 한 개의 케이블카도 없다. 미국이 돈 되는 케이블카를 마다하는 이유는 손상되지 않게 자원을 보존한다는 국립공원의 기본 책무 때문이다.
보존 대상엔 생태계뿐 아니라 경관도 포함되기 때문에 이를 훼손하는 어떠한 인공시설물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 낙석 표지판이나 낭떠러지의 가드레일, 볼록거울 같은 안전시설마저 설치를 꺼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망대와 철사다리, 나무데크가 탐방로의 태반인 우리의 국립공원과는 격이 다르다.
미국에선 어림도 없는 케이블카가 우리 국립공원에선 계속 추진되고 있어 논란이 거세다.
2009년엔 남들이 다 개발하자 해도 혼자 막았어야 할 환경부가 되레 국립공원 케이블카의 규제를 완화하고 나서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국립공원청이 관리하는 400여 곳의 역사와 자연유산은 미국의 자랑이자 자존심이다.
그런 국립공원을 맹목적이고 소모적인 정쟁이 셧다운시켰다.
미국 정신의 상징을 셧다운의 상징으로 만든 건 그들의 저열한 정치였다.
이제 셧다운도 끝났으니 미 전역의 국립공원도 활기를 되찾을 것이다.
디날리에서 만난 그 레인저의 행복한 귀환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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