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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공간 속의 쉼터/영원히 가슴에 담아,,,

[스크랩] 겨울엔 홀로 여행을 떠나라,,, 펌글

by 세인트1 2012. 2. 20.

‘여행이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고 한다면, 그때의 여행이란 십중팔구 ‘겨울 여행’이지 싶습니다. 겨울철의 여행은 다른 계절과 사뭇 다릅니다. 바람은 매섭고, 풍경은 황량하고, 날은 일찍 저뭅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건대 겨울 여행은 가장 따뜻했던 만남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온기를 찾아 들어간 곳에서 여느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더 깊은 곳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래전 충남 서산의 웅도에서 어찌어찌 잔칫상에 끼어들었다가 설설 끓는 아랫목에서 동네 할머니들과 늦도록 10원 내기 민화투를 쳤던 것도 한겨울이었고, 강원 영월에서 홀로 사시던 할머니와 솔가지 태우는 연기 자욱한 부뚜막에 앉아 겸상을 했던 것도 서강에 얼음이 쩡쩡 얼어붙었던 한겨울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행을 ‘삶을 배우는 일’이라고 한다면 겨울만큼 여행에 적합한 계절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다른 계절이라면 풍경에 취하거나 놀이에 마음을 뺏기겠지만, 겨울의 여정에서는 여행자의 시선이 바깥보단 ‘내 안’을 보게 됩니다. 겨울의 밤은 이르게 오기도 하거니와 길기도 하고, 유독 어둠이 짙기도 합니다. 겨울날 낯선 중소도시에서의 보내는 긴 밤은 스스로 제가 떠나온 곳들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입니다. 때로는 주변 사람들과 맺은 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고, 미처 몰랐던 주위 사람들의 소중함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겨울의 여행은 되도록 혼자, 아니면 오래된 친구 한 명과 함께 떠나는 것이 적당하지 싶습니다. 그 여정에서 봐야 할 것은 사람들입니다. 추위를 피해 들어간 시골 마을의 구멍가게에서, 정성껏 상을 차려 내는 읍내의 허름한 밥집에서, 찾는 이 하나 없이 썰렁한 여행지에서 일상에서는 한번도 만날 일이 없던 사람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도회지의 삶에서는 거의 실현 불가능한, ‘이해관계가 없는 만남’과 무시로 마주치게 되는 것이지요. 

여행에서 만나는 타인의 삶이 가르쳐 주는 것은 대개 ‘겸손’입니다. 도회지에서는 너나없이 마치 강박처럼 끊임없이 타인들을 향해 잣대를 들이대거나 저울로 무게를 재려 합니다. 도회지에서 사람을 만나면 서로 직업을 알고 싶어 하고, 집의 평수를 알려 하고, 졸업한 학교와 연봉 따위를 궁금해 하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여행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일상에 슬쩍 끼어들어 자연스레 섞이다 보면 삶이라는 게, 사람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재어지는 게 아니고, 재서도 안 되는 것임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아무런 목적 없이도 다른 이들을 향해 저절로 호의가 넘쳐흐르는 느낌도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겨울의 초입에서 젊은이들에게 권합니다. 아니 꼭 젊은이가 아니어도 결혼 이후 가족 여행 말고는 한 번도 혼자 여행을 떠나 본 적 없는 중년 이상의 어른들에게도 권합니다. 이 겨울에 홀로 여행을 떠나 보시길…. 그 여행이 어떤 것을 선물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떠나온 자리를 먼 발치에서 보며 생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족할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문화일보

출처 : 56년 잔나비들의 추억의 책가방
글쓴이 : 세인트 원글보기
메모 : 홀로여행